다 벗으니 다 보이는구나

                                                           차옥혜

 

모두 훨훨 벗어버려

다 보이는 겨울 숲이여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낱낱의 작고 가냘픈 어린 나무들이

드러나고

땅에 엎딘 마른 풀들도

환하구나

큰 나무들은

아득한 어린 나무들 앞에서

겸손하구나

이제 보인다

가려 보이지 않던

앞마을과 뒷마을

먼 산과 강과 지평선

그리고 길들이

환히 보이는구나

다 보이니

눈보라에 크고 작은 나무들

하나로 당당하구나

길 앞에서 모두가 한 목숨으로 장엄하고 아름답구나

모두 벗어

한 몸 된 겨울 숲이여

모두 벗어

내일인 겨울 숲이여

 

<심상  198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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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시 -1 2006. 5. 5. 15:13

 

  어둠

                                                          차옥혜

 

어둠이 보기 싫어서

벽을 쌓다 보니

내가 그만 어둠이 된다.

어둠의 냄새 어둠의 모습이

구역질나서

도망치다 보니

내가 오히려 무덤이 된다

마주봐야지

떠나지 말아야지

어둠과 복닥거려

피를 흘리고

하루를 잃을지라도

내가 흘리는 눈물만이

어둠을 씻어 내리니

내 체온만이

어둠을 녹여 내리니

 

폭풍우 지나간 뒤

바다는 잔잔하다.

 

<포스트모던  1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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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은 흙을 거부하지 않는다

                                                     차옥혜

 

황토흙을 받아

텃밭에 깔아주고

땅을 뒤집어

헌 흙과 새 흙을 뒤섞는다

헌 흙은 텃새도 하지 않고

새 흙을 받아들여

금새 한 몸이 된다

어디 저희끼리만이랴

그래서 하늘을 날던 새들도

땅 위를 헤매던 짐승들도

종내는 흙에게 안기는 것이리라

 

<시대문학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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