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 2006. 5. 5. 15:47

  

 

                                           차옥혜

 

뿌리내린 황토 산 둔덕

바람 불어불어

평생을 갈대로 울던 그 사람

죽어서도 서산 마루 놀빛 큰 눈으로

고향을 굽어보더니

오늘은 풀씨를 싹틔우고

소나무 향나무 밤나무 키워

빈 산을 채우러

비로 오는 그 사람

나도 비가 되어

세상 하나 이루라 하네

닦아 낸 먼지 안고 수채로 흘러

하수도 썩은 물이 되어도

마침내 바다가 되는

비가 되라 하네

 

<시집 『비로 오는 그 사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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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시 -1 2006. 5. 5. 15:46

  

 분신

                                                    차옥혜

 

님이여

내 애간장 다 태웠어도

길 어두워 못 오신다니

남은 살과 뼈마저 불질러

천 년을 순간으로 사는

불꽃이 됩니다

불꽃이 눈부신 길로

봄바람처럼 오소서

마침내 꽃잎 지듯

내 살과 뼈 재가 되어

님이 밟을 땅

웅덩이를 메우며 스러져도

이 세상 끝날에도 타고 있을

내 불꽃 넋은

님 속에 집을 지으리니

님이여

눈 짓무른 나는

당신을 향하여

지금 황홀한

불꽃이 됩니다.

 

<한국문학  198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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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를 막지 않겠습니다

                                                       차옥혜

 

고통스러워도

귀를 막지 않겠습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음을

감사하겠습니다.

어두운 소리들이 허우적이는 시궁창에

내 귀도 빠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함께 썩고 썩어

발효하여

가스로 훨훨 날아가

하늘이 되게 하소서

괴로워도

귀를 막지 않겠습니다.

 

<심상  198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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