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시 -1 2006. 5. 5. 15:13

 

  어둠

                                                          차옥혜

 

어둠이 보기 싫어서

벽을 쌓다 보니

내가 그만 어둠이 된다.

어둠의 냄새 어둠의 모습이

구역질나서

도망치다 보니

내가 오히려 무덤이 된다

마주봐야지

떠나지 말아야지

어둠과 복닥거려

피를 흘리고

하루를 잃을지라도

내가 흘리는 눈물만이

어둠을 씻어 내리니

내 체온만이

어둠을 녹여 내리니

 

폭풍우 지나간 뒤

바다는 잔잔하다.

 

<포스트모던  1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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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은 흙을 거부하지 않는다

                                                     차옥혜

 

황토흙을 받아

텃밭에 깔아주고

땅을 뒤집어

헌 흙과 새 흙을 뒤섞는다

헌 흙은 텃새도 하지 않고

새 흙을 받아들여

금새 한 몸이 된다

어디 저희끼리만이랴

그래서 하늘을 날던 새들도

땅 위를 헤매던 짐승들도

종내는 흙에게 안기는 것이리라

 

<시대문학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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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고목

시 -1 2006. 5. 5. 15:08

  

 겨울고목

                                                  차옥혜

 

겨울고목은 사상을 한다

엄숙하고 깊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겨울고목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고목은 엄청난 사상의 힘으로

하늘을 빨아들이고

나를 삼킨다

그러자 나도 애닯고 장엄한 고목이 되어

사상의 힘으로

언 땅을 뚫고

깊숙이 뿌리를 내리며

대지를 빨아들인다

수맥을 마신다

아 모처럼 배가 부르다

 

<경희문학  11집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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