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 2006. 5. 5. 16:05

  

 

                                            차옥혜

 

 

끊으라네

나를 묶어 당겼다 늦췄다

허수아비 춤을 추게 하는

병든 줄을 끊으라네

 

풀어 줄 듯

끝내는 끌어내려

나를 곤두박질치게 하는

죽음의 손들을 끊으라네

 

칡덩굴로

나를 칭칭 감아

하늘을 가리는

썩은 인연들을 끊으라네

 

훨훨 새가 되어

해를 껴안으라네

꿈이 생시로 열리는 거기

눈부신 나를 보라네

 

끊으라네

자갈밭에 뿌리박고

나를 동여맨

고문의 줄을

끊으라네

 

<세계문학  198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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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 2006. 5. 5. 15:47

  

 

                                           차옥혜

 

뿌리내린 황토 산 둔덕

바람 불어불어

평생을 갈대로 울던 그 사람

죽어서도 서산 마루 놀빛 큰 눈으로

고향을 굽어보더니

오늘은 풀씨를 싹틔우고

소나무 향나무 밤나무 키워

빈 산을 채우러

비로 오는 그 사람

나도 비가 되어

세상 하나 이루라 하네

닦아 낸 먼지 안고 수채로 흘러

하수도 썩은 물이 되어도

마침내 바다가 되는

비가 되라 하네

 

<시집 『비로 오는 그 사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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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시 -1 2006. 5. 5. 15:46

  

 분신

                                                    차옥혜

 

님이여

내 애간장 다 태웠어도

길 어두워 못 오신다니

남은 살과 뼈마저 불질러

천 년을 순간으로 사는

불꽃이 됩니다

불꽃이 눈부신 길로

봄바람처럼 오소서

마침내 꽃잎 지듯

내 살과 뼈 재가 되어

님이 밟을 땅

웅덩이를 메우며 스러져도

이 세상 끝날에도 타고 있을

내 불꽃 넋은

님 속에 집을 지으리니

님이여

눈 짓무른 나는

당신을 향하여

지금 황홀한

불꽃이 됩니다.

 

<한국문학  198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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