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차옥혜
어제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
서쪽으로 나부끼고
오늘은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동쪽으로 나부꼈다.
이제는 나도 몰래
삼베옷 갈아입히고
저승 갈 시간이라고
나뭇가지에서 떨쳐 버리니
가시철망에 찔리고
아스팔트에 구르다
구둣발에 채이며
골목을 돌고 돌아
시궁창에 떨어졌다.
저승엔 바람 없겠지
내 뜻대로 나부끼리라.
<바람은 늘 떠나고 있다(은금나라) 1993>
나뭇잎
차옥혜
어제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
서쪽으로 나부끼고
오늘은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동쪽으로 나부꼈다.
이제는 나도 몰래
삼베옷 갈아입히고
저승 갈 시간이라고
나뭇가지에서 떨쳐 버리니
가시철망에 찔리고
아스팔트에 구르다
구둣발에 채이며
골목을 돌고 돌아
시궁창에 떨어졌다.
저승엔 바람 없겠지
내 뜻대로 나부끼리라.
<바람은 늘 떠나고 있다(은금나라) 1993>
기도 2
차옥혜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만 아니라
패배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불붙고 맞아서 제 구실 하는
대장간 쇠붙이를 저는 압니다.
<사랑하는하나님께(타임기획), 1990>
매미
차옥혜
가을이 되고서야 하늘을 본다
날마다 팔 다리에서 온몸으로
마비증세가 퍼져간다.
아무리 노래를 해도 울림이 없다.
여름날 몸을 떨던 나뭇잎이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어찌하여 들풀들은 무릎 끓기 시작할까
왜 나무는 끝내 입을 다물고 있을까
여름내 노래 불러준 모든 것이
왜 나를 거부하고 있을까
이 삭막한 대지를 적시는 비는 무엇인가
이제야 끝없는 물음에
하늘만 자꾸 넓어져 간다.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