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시 -1 2006. 5. 5. 16:14

  

 나뭇잎

                                                    차옥혜

 

 

어제는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

서쪽으로 나부끼고

오늘은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동쪽으로 나부꼈다.

 

이제는 나도 몰래

삼베옷 갈아입히고

저승 갈 시간이라고

나뭇가지에서 떨쳐 버리니

가시철망에 찔리고

아스팔트에 구르다

구둣발에 채이며

골목을 돌고 돌아

시궁창에 떨어졌다.

 

저승엔 바람 없겠지

내 뜻대로 나부끼리라.

 

<바람은 늘 떠나고 있다(은금나라)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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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2

시 -1 2006. 5. 5. 16:14

  

 기도 2

                                          차옥혜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만 아니라

패배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불붙고 맞아서 제 구실 하는

대장간 쇠붙이를 저는 압니다.

 

<사랑하는하나님께(타임기획),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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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시 -1 2006. 5. 5. 16:13

 

  매미

                                                 차옥혜

 

가을이 되고서야 하늘을 본다

날마다 팔 다리에서 온몸으로

마비증세가 퍼져간다.

아무리 노래를 해도 울림이 없다.

여름날 몸을 떨던 나뭇잎이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어찌하여 들풀들은 무릎 끓기 시작할까

왜 나무는 끝내 입을 다물고 있을까

여름내 노래 불러준 모든 것이

왜 나를 거부하고 있을까

이 삭막한 대지를 적시는 비는 무엇인가

이제야 끝없는 물음에

하늘만 자꾸 넓어져 간다.

 

<시집 『깊고 먼 그 이름』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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