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뭍으로 가고 싶다

                                                            차옥혜

 

섬은 야윈다

제 살점을 떼어 파도를 풀며

제 뼈를 떼어 갈매기를 날리며

섬은 한사코 뭍으로 가고 싶다.

 

흑산도 그 할아버지는

아들 다섯 모두 뭍으로 보냈다.

물고기 잡고 미역 따고 김 말려

섬에서 번 돈

늙은 마누라와 쓸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뭍으로 보낸다.

 

섬은

실은 뭍도 수 만 섬들이 모여

어깨 부딪치며 악다구니하는 곳인 것 알면서도

모든 존재는 종내는 빈배로 떠돌다

섬이 되는 것 알면서도

뭍으로 가

어깨 한 번 부딪쳐보고 싶은 거다.

말 한 번 건네 보고 싶은 거다.

천년 외톨이로 쓸쓸한 섬은

만년 벙어리로 서러운 섬은

 

<문예운동  200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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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버리랴

시 -2 2006. 5. 5. 16:24

  

마음을 버리랴

                                                       차옥혜

 

너를 보니

기쁘다 즐겁다

다시 너를 보니

아프다 슬프다

눈을 감았다 다시 너를 보니

너는 환하다 빛이다

자고 나서 다시 너를 보니

너는 없다 어둠이다

귀를 기울이니

너는

침묵이다

번개소리다

속삭임이다

 

눈을 버리랴 귀를 버리랴

아니 마음을 버리랴

 

너는 너인데

내 마음 따라

너는

바위이다가 풀잎이다가

도깨비이다가 사람이다가

꽃이다가 짐승이다가

별이다가 허공이다가

 

마음에 재를 뿌려라

눈뜨고 눈먼

귀 열고 귀 먹은

가엾은 사람아

 

<강남문학 7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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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4  

            -내 서른세 살 어머니

 

                                                                       차옥혜

 

 

육이오 전쟁이 난 1950년 여름

내 서른세 살 어여쁜 어머니는

전국 기독청년회 전북지부를 창설하고

안재홍 선생이 이끌던 신생회 전북지회 회장을 하며

민족의 평화통일과 자주통일정부를 세우려 힘을 합치던

5.10 총선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사람들이 표로는 당선되고 낙선했다고 수군대던

서른세살 남편을 감옥에 뺏기고

어린 자식들 넷 시골 친척집에 각각 나누어 맡기고

두 살 난 아기 등에 업고

임신한 몸으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팔

빨래비누 머리에 이고

논둑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지만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 야단맞고 발 동동거리며

싸리대문 앞에서 울고 있는 다섯 살배기 내가 가엾어

여치와 메뚜기가 발등을 간질이는지도 모르고

뜸북뜸북 뜸부기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아니면 어머니 눈에

붉은 맨드라미 가득 피여 쓰라렸을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내 아름다운 서른세 살 어머니가

내 마음 논둑을 아프게 걸어가고 있다.

 

<문예운동  200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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