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편지 1
차옥혜
껍질만 남아 있던 사랑마저도 떠나고
뒤틀린 등과 저승꽃 핀 얼굴과
아무리 가리려 해도 다 드러나는
훵하게 뚫린 못 생긴 가슴만 남았습니다.
젊은 날 아름답던 그림자를 두고 온
그 언덕과 해변과 거리를
되새김질할 위장도 헐어버렸습니다.
온몸이 얼음덩이입니다.
나는 무엇을 보며 살아왔습니까.
이제 의지할 것은 내게 걷어채고 짓밟히면서도
내 불거진 뿌리를 꼭 잡고 버틴
당신뿐입니다.
그동안 내가 기댄 것은
바람벽이 아니라
당신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버리고
나마저 나를 버리고서야
나는 돌아갑니다
당신에게
나는 껴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 무엇인
침묵이면서 소리인
죽음인 듯하면서 생명이고 삶인
당신을
<시집 『흙바람 속으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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