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차옥혜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
길 가던 사람이
늙은 느티나무 휑하게 삭은 몸통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50여 년 사막을 건너다보니
내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이 집을 짓고 새떼가 날고
강물이 흐르고 풀들이 흔들린다
사람들이 춤을 춘다.
한 아주머니가 애 낳은 딸에게 고아주려고
호박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속이 텅 빈 것을 고르고 있다.
<작가 1997년 5ㆍ6월호>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차옥혜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
길 가던 사람이
늙은 느티나무 휑하게 삭은 몸통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50여 년 사막을 건너다보니
내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이 집을 짓고 새떼가 날고
강물이 흐르고 풀들이 흔들린다
사람들이 춤을 춘다.
한 아주머니가 애 낳은 딸에게 고아주려고
호박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속이 텅 빈 것을 고르고 있다.
<작가 1997년 5ㆍ6월호>
연필
차옥혜
잘못을 비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키를 낮추며
언제고 거듭남이다
새 출발이다 자유다
대문은 항상 활짝 열려있다
누구든지 마음대로 들어오고 나간다
단 한 번의 화살로
과녁의 중심을 꿰뚫어야하는
지워도 흔적이 남아 족쇄가 되는
만년필과 볼펜의
독재성 폭력성 기계성 야만성을
거부한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시작이다
마지막까지 누리는
자유의 향기
당당하게 소멸을 드러낸다
연필로 너에게 간다
<문학과창작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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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차옥혜
바람이 부네
밟혀 일어서지 못하는 풀들
일으키려
바람이 부네
두더지가 갉아먹은 뿌리
그 상처 어루만져
잔뿌리 키워주려
바람이 부네
가뭄에 목 타는 잎새
싱싱한 푸른 잎으로
다시 살라고
바람이 부네
이 벌판 가녀린 풀잎으로
흔들리는 것이 서러워
흐느끼는 풀에게
네가 바로 하늘이다
너의 흐느낌은
어둠을 쫓는 노래이고
너의 흔들림은 빛을 몰아오는 춤이다
라고 속삭이며
바람이 부네
어제 죽고 오늘 죽은 풀들
내일 다시 태어나고
눈보라에 떠난 풀들
봄날에 다시 돌아오는
보라
너희는 죽지 않는 생명
영원히 이 벌판을 지키리니
나 바람이 너 풀이고
너 풀이
나 바람이다
는 것 보여주려
바람이 부네
풀벌레와
두더지도
이빨을 잠재우고
한 점 바람으로
풀잎과 함께
바람길로 오라고
바람이 부네
하늘을 열고 열어
눈부신 새 빛을
풀들의 가슴에 안기려고
바람이 부네
바람이 부네
<서사시 『바람 바람꽃』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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