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도를 달리는 열차

                                                         차옥혜

 

철암에서 밤 11시발 서울행 태백선 열차 탄 송 씨는

10여 년 전 탄광촌에 들어올 때는 한밑천 모아

곧 도시로 떠날 줄 알았다는 송 씨는

탄광이 폐쇠되자

병든 몸에 빚만 남았다는 송 씨는

가난 때문에 엄마마저 버리고 간

빈집들 틈에서 대낮에도 무서워하는

잠든 어린 자식들의 머리밭에

'아빠가 서울 가서 일자리 구하는 데로 데리러 오마'

편지 써놓고 왔다는 송 씨는

"가도가도 나에겐 세상이 왜

캄캄한 갱 속이기만 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열차 타고 가면 새끼들의 밥그릇이 될

막장이 나올까요?"

옆 좌석 낯선 나에게 눈시울 붉히며 물어본다.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며 땅굴 팔 때는

어쩔 수 없는 탄가루 흡입기가 되고

지하 7000미터 아래서 석탄 캐다보면

어느덧 불붙은 연탄이었고

갱 밖에선 연탄재였다는

그래도 지금은 그런 막장이라도 간절하다는 송 씨는

여기저기 승객들이 졸고 있는 야간열차에서

눈 한번 붙이지 못한다.

"아주머니, 평생 막장 찾아다니는

막장꾼의 가슴에선

무슨 소리가 나는지 압니까?"

송 씨는 숨막히게 기침하다가 더듬더듬 말한다.

 

                                           <월간문학 199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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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차옥혜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

길 가던 사람이

늙은 느티나무 휑하게 삭은 몸통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50여 년 사막을 건너다보니

내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이 집을 짓고 새떼가 날고

강물이 흐르고 풀들이 흔들린다

사람들이 춤을 춘다.

한 아주머니가 애 낳은 딸에게 고아주려고

호박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속이 텅 빈 것을 고르고 있다.

 

<작가  1997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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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시 -1 2006. 4. 23. 11:00

  

 연필

                                                  차옥혜

 

 

잘못을 비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키를 낮추며

언제고 거듭남이다

새 출발이다 자유다

대문은 항상 활짝 열려있다

누구든지 마음대로 들어오고 나간다

단 한 번의 화살로

과녁의 중심을 꿰뚫어야하는

지워도 흔적이 남아 족쇄가 되는

만년필과 볼펜의

독재성 폭력성 기계성 야만성을

거부한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시작이다

마지막까지 누리는

자유의 향기

당당하게 소멸을 드러낸다

 

연필로 너에게 간다

 

<문학과창작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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