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 囊中之錐

 이상옥(시인창신대학 교수)

 

  차옥혜의 삼월에 내리는 눈은 앞의 빈집과 마찬가지로 진부한 테마로 볼 수 있는 사랑, 삼월에 내리는 눈의 이미저리로 새삼 새롭게 조명한다. 

 

어디만큼 가다 되돌아왔니?

 

따뜻한 겨울에 쫒겨간 너를 찾아 헤매다

매화꽃 피고 산당화 산수유 꽃망울 맺히고

초록물 오른 황매화 가지 바람그네 타는

봄길 어귀에서

뜻밖에 못 잊어 돌아온 너를 만났다.

내 영혼은 네 입술에 뺨에 온몸에 입 맞추며

너를 얼싸안고 천지사방 휘돌아 춤을 춘다.

 

네 눈망울은 왜 그다지도

맑으면서 서글프냐

네 춤은 왜 그다지도

설레면서 아프냐

 

순간일지라도 세상과 나를

꽃 꽃 꽃 눈꽃으로 피워놓은

곧 또다시 떠나고 말

내 사랑아

-삼월에 내리는 눈

 

이 시는 타의에 의해서 헤어진 를 찾아서 헤매는 화자에게, 뜻밖에 돌아온 너를 만나서 환희의 순간을 보내지만 곧 또다시 떠나고 말 존재가 너임을 드러낸다. 이 같은 관념적 진술은 따뜻한 겨울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눈이 매화꽃 피고 산당화 산수유 꽃망울 맺히고 초록물 오른 황매화 가지 바람그네 타는 봄길 어귀 삼월에 내린 눈을 상관물로 형상화되고 있기에 새롭게 읽혀진다. 눈의 속성에 기댄 사랑의 절실함이 절절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게다가 이 시에서 다루어지는 사랑은 의 환유로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유한한 생의 아름답고도 슬픈 패러독스를 환기한다. 

 

<시문학 20077월호 147-148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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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옥혜 시집 허공에서 싹 트다

  문덕수(시인예술원 회원) 

 

차옥혜(1984한국문학신인상 당선)의 제 8시집(?). 시전집을 합하면 제9시집. 작품은 꽃보다 눈부신 사람68. 이중에는 이라는 리얼리티가 강한 15편의 연작시도 포함되어 있다. 매우 쇼킹한 제목을 가진 이 시집은 단순한 서정시집으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폭넓은 현실적 제재들이 내포되어 있다. 양가(良家)의 규수형(閨秀型) 시인다운 평소의 거지(擧止)에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 시집은 작자 자신과 출신 가문(家門)의 전기(傳記)까지 편입되어 있어, 역사적 서사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허공에서 싹튼다는 제목은 고난의 시대를 극복한 한 서사까지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니힐리즘의 극복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시도 그렇다. 꽃보다 눈부신 사람에는 과 그 꽃을 추구하는 존재의 두 실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은 그리움의 궁극적 대상이다. 굶주린 소년과 독수리1). 자본의 블랙홀에 빠진 아프리카의 노예들(2)은 적나라한 현실의 한 단면이지만, 6.25당시 33세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행적은 꽃을 찾아 나서는 몸짓이다. 꽃보다 눈부신 사람속에 내재되어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시문학 20086월호, 188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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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옥혜 시는 첫눈 내리는 날인가

고은(시인)

 

 

어디 한 군데 긴장 없이도 절로 긴장을 낳아주는 모성인가.

살아온 것 혹은 살아가는 것들을 그냥 허비하지 않고 그 자국들 하나하나에 애틋애틋 의미 짓는 일이 여기에 있다.

그 간의 삶이 이토록 마음의 설화로 담겨 절기의 매듭조차도 오롯이 시에 늘어붙어 단풍든다.

이런 일은 스무 살 서른 살의 섬광 따위를 재운 삶의 바람자락들이 그 앞뒤로 널리 퍼져가 세상의 진정으로 열리는 세계이다.

저 혼자의 안을 넘어 이승의 여러 곳 아픔들에게까지 가있는 그 가슴의 처음 같은 힘은 또 무엇인가. 옥혜 시는, 그래, 첫눈 내리는 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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