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닿을 수 있는 극단의 지대

  송기환(문학평론가/ 대전대 교수)

 

 

시가 매력적인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일상과 현실이 닿을 수 없는 데에까지 상상의 나래와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눈으로 읽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으로 진술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순수한 상상과 사유, 순수 성찰만으로 시가 구성되는 경우가 그것일 터이다. 일상과의 접점이 있다면 그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출발의 지점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시는 현실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되 그곳을 벗어난 너른 지대로 이어질 것이다. 그 지대는 도무지 일상에서 습득된 사유의 틀이 무연해져서 암중모색하듯 사유의 새로운 길을 더듬어 내야 하는 곳이다. 때로는 허우적거림과 때로는 망연함, 혹은 허공에 발 딛고 있는 듯한 공허함이 재배하는 것도 그 너른 지대의 속성일 것이다.

시인은 누가 끌어들이는 것도 아닌데, 그곳에 왜 속절없이 빠져 버리는 것일까. 그 무엇인가가 불쑥불쑥 자아를 강타하여 시인의 내면에 구멍을 내는 것이기라도 하는 것인가. 환상인 듯도 하고 초현실인 듯도 한 그곳을 향하는 시인의 몸짓에는 그러나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자 하는 위악적 태도가 깃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단지 자유에의 자연스러운 쏠림이고 초월을 향한 익숙한 지향이다. 따라서 이 지대를 그리는 시인들의 시선에는 머뭇거림이 없으며 이 지대 안에서 시인들은 거칠 것 없이 세계를 누린다. 이 지대는 자유의 공간이자 무한의 영역인 것이다.

일상의 시공간적 형질로부터 벗어나 있는 까닭에 이곳은 현실감이 없으며 이곳에서 피어나는 꿈과 상상은 질료로서 간주되기 힘들 것이다. 이곳의 꿈과 상상은 단지 잠시 눈앞에 펼쳐졌다 사라지는 신기루로서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꿈과 상상의 힘은 현실에 육박하여 새로운 현실을 강제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꿈과 상상이 마치 현실의 시공간을 점유하기라도 하듯 일상 가운데에 부정할 수 없는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길러 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현실의 적확하고 합리적인 인식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꿈과 상상 역시 올바르게 가꾸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어되지 않는 욕망의 무분별한 배설이나 무차별적인 무의식의 분출과 상관없는 것으로서, 훌륭한 시인들은 이에 대해 결코 무자각적이거나 무책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언제나 가야 할, 가게 되어 있는 희망의 세계

 

달리고 달려온 대륙을 바다가 가로막는 곳

파도쳐 파도쳐온 바다를 절벽이 가로막는 곳

거기에 희망봉이 있다.

바다는 절벽을 기어올라야 희망봉에 오를 수 있고

땅은 바다에 빠져야 희망봉을 만날 수 있다.

두려움과 절망과 죽음을 무릅써야만

만날 수 있는 희망봉

적과 적이 덜컥 껴안아야만

만날 수 있는 희망봉

살아있는 한

포기 할 수 없는 곳

저절로 꿈꾸며 달려가는 곳

그러나 오늘도

바다는 끝없이 밀려와 절벽을 기어오르다 미끄러지고

땅은 끝없이 달려와 바다 앞에서 한숨 쉰다.

 

있으나 없는 희망봉

쓸쓸하고 영원한 오로라여

차옥혜. <희망봉> 전문,시문학5월호

 

차옥혜 시인의 <희망봉>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꿈과 상상의 세계가 얼마나 커다란 모험에 의해 비로소 구해질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곳은 두려움과 절망과 죽음을 무릅써야만 만날 수 있적과 적이 덜컥 껴안아야만 만날 수 있을 만큼 크나큰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자 바다는 절벽을 기어오르고 땅은 바다에 빠져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인 만큼 험난한 여정이 강제되는 곳이다. 아니 그러한 모험과 여정을 감내하고서라도 도달해야 하는 곳이 있는 것이다. 여하튼 그곳은 모든 어려움을 강요할 것이며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달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말 그대로 희망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봉은 일상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꿈과 상상의 세계가 지닌 내포와 외연의 측면에서 일치한다. 시인이 말하듯희망봉에 가 닿기 위해 겪어야 하는 험한 고난은 곧 우리가 꿈과 상상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과 동일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의 시는 결국 꿈과 상상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고 꿈과 상상의 세계는 우리의 희망이자 유토피아가 되는 셈이다.

시인은 희망봉에 도달하기 위한 인간의 도저한 갈망과 의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거니와, 이러한 묘사에 의해 인간에게 있어 희망봉의 절실함이 더욱 부각된다 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인간에게 꿈과 상상의 세계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역시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꿈과 상상의 세계는 곧 인간이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야 하는 궁극의 유토피아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라는 점에서 있으나 없쓸쓸하고 영원한그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고독과 쓸쓸함을 견뎌야 하는 시련의 땅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는 누구일까? 그는 꿈과 상상의 가치와 힘을 알고 있는 자일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므로 어떤 고난과 두려움도 무릅쓸 준비가 되어 있는 이가 그들일 것이다. 우리가 꿈과 상상의 세계를 순수하게 그려 내는 데 무한한 정열을 보이는 시인에게 주목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학사상 20076월호, 248-249, 254-256 쪽 수록>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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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희망의 이중주

  김미정

 

  그녀에겐 자상한 친정아버지가 계시다. 양평에 살고 계시다. 서울을 떠난지 1.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으로 힘이 되어 주시는 아버지. 당신은 힘들어도 자식들만큼은 아낌없는 애정을 쏟아 키워주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빼앗겼다.

그녀가 알던 이전의 아버지는 안 계신다. 친정 현관을 열면 반갑게 웃으시며 나오시던 아버지. 이젠 없다. 이것은 분명 빼앗긴 것이다. 소리 없는 병마가 서서히 그녀의 아버지를 빼앗아 갔다. “아빠! 딸 왔어요.” 아버지는 아무 표정 없이 밀납인형 같은 얼굴로 다른 곳을 보고 계신다. 어둠 속에서 먹먹한 가슴으로 두리번거릴 때 차옥혜 시인의 위험한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와 장종권 시인의 꽃이 그냥 꽃인 날에를 만났다. 

1. 풍경 뒤의 풍경들

차옥혜 시인은 1984년 등단한 이래 일곱 권의 시집과 한권의 시선집을 상재하고 문단 활동을 열정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시인 중에 한 분이다. 시인의 겉모습은 매우 정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문학과, 삶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도 더 맹렬히 타오르고 있는 것을 독자들은 시 안에서 느낄 수 있다. 사랑과 자연 친화의 사유는 그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축이다. 관념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사랑의 의미와 자연이 주는 생명력과 치유력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부드러운 서정성과 함께 날카로운 자의식이 빛나는 시편들은 차분한 문체와 시적 언어의 질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시집 제목을 살펴보면위험한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위험한 향나무에 시선이 멈췄다. 왜 향나무가 위험할까? 또한 그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니······. 궁금증은 이미 나로 하여 향나무 향이 가득한 시집 속으로 한걸음 들어서게 했다.

 

향나무 웃자란 가지를 치는데

순식간에 벌이 장갑 낀 손가락을 쏜다

손가락이 쿡쿡 수시고

손등이 부어오르고 팔뚝까지 얼얼해진다

그러나 벌집이 숨어있는 위험한 향나무를

나는 버릴 수 없다 떠날 수 없다

독이 오른 아픈 손으로

나는 다시 전지를 한다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불바다에 뛰어든 그

전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고

두 다리를 잃어버린 역무원

사랑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구나

목숨을 거는 것이구나

사랑 있어

캄캄한 세상도 희망이 되는구나

 

화끈화끈 쑤시는 내 손끝에서

벌집이 숨어 있는 위험한 향나무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위험한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전문

 

화자는 벌집이 숨어있는” “향나무, 위험 인자를 가지고 있는 향나무를 버리지 않는다. 아니, 버릴 수 없다. 그것은 사랑을 위해 불바다에 뛰어드는 일이라고 했다. 위험하고 때로는 목숨조차 위태로워져도 사랑은 진행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이런 사랑을 생각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요즈음은 이성과의 사랑은 물론, 부부나 가족 간에도 이해관계를 따지며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버린다.

시집 곳곳에서 농밀한 사랑의 힘이 어둠을 빛으로 바꾸고, 죽음을 생명으로 부활시키며, 굳게 닫힌 절망의 문들이 희망으로 활짝 열리는 기적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벌판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뿐인 세상에서

어디서 어떻게 호수를 몰고와

나무들 풀들 꽃들 깃발로 꽂고

아름다운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중략)

사막을 구원하고 있는 당신이 있어

모래에 푹푹 빠지는 삶도

무지개가 되었습니다.

-오아시스부분 

 

절대적 신이거나, 어머니이거나, 또는 사랑하는 그 어떤 대상인 당신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벌판과 같은 절망적인 세상 속에 오아시스를 만들어 희망을 길어내는 존재이다. 시인의 시세계를 지배하는 정서 중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것이 상당부분 자지하고 있다. 시집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 시집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집이다.

나무들 풀들 꽃들깃발로 꽂고여기는 생명이라고, 이곳은 희망이라고 표시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머니 외로운 방 풀어줄 열쇠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가끔 잠시 환기만 하고

나는 그 방문 활짝 열지 않았네

 

어머니 떠나자 어머니의 외로운 방에

내가 갇혔네

-외로운 방부분

 

부모님 살아 실 제 섬길 일 다하여라고 했던가. 어머니의 죽음은 화자에게 세상의 그 무엇보다 커다란 상실감의 요인이 되어 그에 따른 회한이 흘러넘친다. 열쇠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열어드리지 못한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밤은 깊고

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데

저 먼 불빛까지

아픈 맨발로 어떻게 갈까요

내 영혼의 신발 당신이

사무치고 사무칩니다.

-내 영혼의 신발부분 

어머니는 내 영혼의 신발이라고 했다. 이제 어머니가 떠난 이후의 삶은 아픈 맨발로 걸어가야 하는 고통의 길이다.

시인의 경험에서 오는 생생한 감정의 기록이 구체적이면서도 전면적로 드러나 맨얼굴로 독자를 마주하게 하는 시이다. 또한 시인은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 잠자다가 거울을 보다가 /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 아픈 가슴으로 말하(슬픈 죄인)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한다. 시 안에서 삶의 진정성이 주는 감동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파고들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나도 죄인이다. 

 

어머니 집에 전화를 한다.

전화를 하기만 하면

언제나 전화를 받던 어머니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매일매일 전하던 안부를 어찌할까.

그래도 나는 전화 앞에 우두커니 앉아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귀에 대고

행여나 어머니 음성 들릴까

숨죽여 전화벨 소리를 듣는데

전화벨 소리 저쪽 끝

너무나 넓고 아득한 쓸쓸함만

전화 줄을 타고 와

나를 덮는다.

 

어머니!

-전화벨은 울리는데전문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는 시이다. 믿어지지 않는 화자의 혼란스러움과 황망함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뛰어넘어 어머니가 마치 살아계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진솔한 시적 표현과 감정의 농도는 모두의 마음을 흔든다.

이와 같은 보석 같은 시편들은 사람 많은 전철 안에서 나를 내내 고개 숙인 채 손수건을 들고 있게 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존재의 상실감은 시인에게 감상적 허무주의에만 국한 되어있지 않고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한다. “세상의 길들이 어머니의 가슴에서 떠나고 / 세상의 길들이 어머니의 가슴으로 돌아”(피에타.2)온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모든 길은 어머니로 통한다. 

 

어머니 아버지 내 손 잡고

봄꽃놀이 가시던 들길을 기억하는 것은

추억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중략)

오늘도 나는 미래 세상에 이르기 위하여

지난날을 되새김질하며

소중한 기억을

내 마음 밭에 꼭꼭 심어 놓습니다.

-미래의 문부분

 

늙으신 어머니

낙엽벌판 가을나무로 서서

굽은 등 바람에 기대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 몇 잎 흔들며

단풍 눈으로

끝없이 나를 바라보며

내게 세상을

열어주신다

(중략)

늙고 죽는 것은

또 하나 길의 시작이구나

-늙고 죽는 것은부분

 

시에서 나타난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과거로 지향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영위하는 토대이며 나아가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이다. 이와 같은 시인의 인식이 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은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감을 뜻하며 기존의 것들을 뒤로하고 새 장을 열어간다는 의미다. 화자는 다시 태어난, 거듭 난 자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곧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가는 즉 자신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확보해나가는 의지를 표현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늙고 죽는 것은 /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했다. 또한 늙음도 아름다움이다라는 시에서 눈이 어두워져 / 마침내 밝아지는 마음의 눈이라고도 했다. 시선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인생의 연륜을 통해 생의 내면을 통찰하며 유한한 삶의 경계를 새롭게 재구성하여 확장시킨다. 

 

숲에 빠져드니

평화롭고 가볍고 투명하고

넓어지고 높아지고 깊어져

풀잎마다 꽃잎마다 깃든 우주가 보이고

숲이 내게 깃든다.

-숲에서 눈 뜬 아침부분

 

사랑은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했다. 길들여지는 것은 서로에게 스며드”(낙엽의 열반)는 것이며 서로에게 빠져드는 것. “깃드는 것이다. 자연과의 합일로 내 안에 자연이 살아 있으며 자연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을 통한 심신의 정화를 느낄 수 있다. 자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자연 친화적 시이며, 자연을 닮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삶의 내밀한 속삭임이 우리의 눈을 맑게 해준다.

시집에는 국내와 세계 각국의 여행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와 자연과 생명의 존엄성을 메시지로 갖는 시편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사회성 있는 시들도 만날 수 있는데 그녀의 가난에 세계는 빚지고라는 시에서 파라과이 밀림의 인디오 마을에서 만난 가난한 여인을 통해 타자의 고통에 대한 응시의 시선이 인류애적 사랑으로 점점 깊어지고 확대되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과 자유와 평화, 정의 등의 정서로 나타난다. 다음은 시인의 시세계와 인생관 세계관에 대한 인식이 내포되어 있는 시이다.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보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지나간, 올 존 존재들의

모습을 본다.

소리들을 듣는다.

(중략)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버무리어

생명우주를 빚는다.

현실과 꿈을 버무리어

풀들에 나무들에 시가 주렁주렁 열리는

냇물에 바다에 시가 떼 지어 헤엄치는

평화로운 생명마을을 세운다.

사랑과 열정의 넋으로

아늑하고 자유로운 생명집을 짓는다.

-시인부분

 

보이는 것은 순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린도 후서4:18)라는 말이 있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들을 찾아 올 존재들의 모습을 길어 올려 보여준다.

생명, 자연, 인간, 삶에 대한 지열한 문제의식을 내장한 시들은 각박한 요즘의 세태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늑하고 자유로운 생명집이 가득한 평화로운 생명마을이 지구상에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철길이여 삶이여

고막을 찢는 열차들에 진저리를 쳐대도

잠시 잠시 적막은 있고

어쩌다 산자락에서 벚꽃비도 몰려오고

라일락과 아카시아와 더덕 향기도 흘러오고

눈이 오고 비도 와

견디며 견디며

하늘을 보고 있는냐

아직도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냐

너의 끝엔 누가 있느냐 무엇이 있느냐

-철길에서부분

 

기차가 푸른 하늘을 싣고 달린다. 내 오래된 낡은 책가방을 싣고 달린다. 엄마의 자장가도, 누렇게 바랜 일기장도, 그 시절의 어린 나를 싣고 떠난다. 나를 스쳐 지나간다. “잠시 잠시 적막을 던지며 달린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고난과 역경 가득한 혼돈의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어있다는 것이다.

또한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적막하늘은 희망을 의미한다. 시인은 나를 태우고 갈 열차를 쓸쓸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고막을 찢는 열차들에 진저리를 쳐대도우리도 지금 이름 없는 간이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지 않은가.

시인은 헤치고 거슬러도 / 언제나 흔들리는 세상 // 파도야 치거라 / 흔들려도 흔들려도 / 끝끝내 노래하며 / 나는 살리라”(파도 위에서)고 외친다. 시인의 노래는 계속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현실 2007년 봄호, 230-239쪽 수록>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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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옥혜의 하루가 천년이고 천년이 하루인 나라

  박이도 장로(시인, 전 경희대 교수)

 

 

연륜이 더해갈 수록 시심도 더욱 무르익어 가는 다산성의 시인이다. 필자는 차옥혜 시인의 시집 흙바람 속으로’(96)에서 보여 준 흙, 고향으로의 귀향의식이 특유의 모성애로 변주된 흙의 담론으로 진한 인상을 받은바 있다. 최근작 시집 위험한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에서 믿음의 바탕에서 쓴 작품 한 편을 감상하자.

 

하루가 천년이고 천년이 하루인 나라

 

 

그 나라엔 시간이 없다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없다네.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순간인

그 나라엔 죽음도 없다네.

어린이도 젊은이도 노인도 없는

나이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네.

사람들은 별처럼 빛나

서로서로 길을 밝혀준다네.

식물들은 나이테를 만들지 않고

동물들도 늙지 않고 싸우지 않는다네.

모두 공기만 먹고 살아도 건강하다네.

바위와 냇물과 식물과 동물이 사람과 말을 하고

사람과 함께 시를 읊고 노래를 한다네.

그 나라엔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고 계시고

이 세상에서 아직 못 본 내 손자들도 있다네.

평화와 사랑만 있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그 나라엔 시간이 없다네.

 

시인은 에덴동산 같은 천국을 꿈꾸고 있다. 시인은 천국의 영원한 삶을 노래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땅이나 나무나 혹은 해와 달을 의인화해서 천국의 삶을 비유한 문학적 표현이 연상된다.

시간 개념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제목은 베드로 후서 38절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에서 따왔다. ‘시간이 없고’ ‘죽음도 없는 나라는 곧 영원한 나라요 천국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편 902절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차옥혜 시인도 영생의 날에 이르게 될 영원한 천국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문학’(84)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깊고 먼 그 이름’ ‘흙바람 속으로6권의 시집과 서사시집 바람 바람꽃’(87)이 있다.

 

<한국장로신문 2007.4.21.12쪽 수록>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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