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 쓸쓸한 여정에 대하여

  양병호(시인/문학평론가/전북대교수)

 

 

온전한 너를 만나기 위해선

네가 뒤집어쓴 호두껍질을

알맞게 균열을 내어 벗겨내야 한다.

너무 세게 힘을 주면

너는 바스라지고

힘을 조금 주면

너는 껍질을 벗지 못하고

상처만 입는다.

껍질을 쓴 너를 붙잡고

너에게 하늘을 열어줄

가장 적절한 힘을 찾는

내 손에 쥐가 난다.

-차옥혜 사랑법

 

이 작품은 살아가면서 그 어느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컨대 사랑의 역학관계에 대해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에 따르면 인생은 사랑인 것이다. 인생을 살아내면서 통과의례에 해당하는 사랑에 전염되지 않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 사랑을 가꾸고 진행하면서 마침내 완성하는 방법론에 대해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사랑의 상상력은 사랑의상대를 호두로 치환하여 인지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사랑하는 상대는 마치 호두처럼 단단한 껍질로 그 본질적 속성을 감싸고 있는 존재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대로부터 사랑의 본질적 속성을 드러내게 하는 의 행동역학이다. 그 행동역학의 규정 혹은 사랑법은 알맞게 균열을 벗겨내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사랑하는 상대의 본질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것은 상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게 있는 것이다. ‘을 다스리는 방법에 따라 상대는 상처를 입거나 아니면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역학을 위하여, 의 사랑의 본질을 드러낼 가장 적절한 힘을 찾기 위하여 내 손에 쥐가 나는 것이다. 사랑에 대처하는 화자 의 자세가 상대의 태도에 앞서 중요함을 이 시는 역설하고 있다. 사랑은 적절한 힘을 가하여 호두를 까듯 정성스럽게 강약을 조절하여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랑법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리고 그 사랑이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마침내 너에게 하늘을 열어줄 힘을 조절하고 균형잡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사랑의 대상과 열정이 사라지고 없는 참담한 비극적 상황에 직면한다.

 

<시문학 20091월호 78-79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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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중지추 囊中之錐

 이상옥(시인창신대학 교수)

 

  차옥혜의 삼월에 내리는 눈은 앞의 빈집과 마찬가지로 진부한 테마로 볼 수 있는 사랑, 삼월에 내리는 눈의 이미저리로 새삼 새롭게 조명한다. 

 

어디만큼 가다 되돌아왔니?

 

따뜻한 겨울에 쫒겨간 너를 찾아 헤매다

매화꽃 피고 산당화 산수유 꽃망울 맺히고

초록물 오른 황매화 가지 바람그네 타는

봄길 어귀에서

뜻밖에 못 잊어 돌아온 너를 만났다.

내 영혼은 네 입술에 뺨에 온몸에 입 맞추며

너를 얼싸안고 천지사방 휘돌아 춤을 춘다.

 

네 눈망울은 왜 그다지도

맑으면서 서글프냐

네 춤은 왜 그다지도

설레면서 아프냐

 

순간일지라도 세상과 나를

꽃 꽃 꽃 눈꽃으로 피워놓은

곧 또다시 떠나고 말

내 사랑아

-삼월에 내리는 눈

 

이 시는 타의에 의해서 헤어진 를 찾아서 헤매는 화자에게, 뜻밖에 돌아온 너를 만나서 환희의 순간을 보내지만 곧 또다시 떠나고 말 존재가 너임을 드러낸다. 이 같은 관념적 진술은 따뜻한 겨울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눈이 매화꽃 피고 산당화 산수유 꽃망울 맺히고 초록물 오른 황매화 가지 바람그네 타는 봄길 어귀 삼월에 내린 눈을 상관물로 형상화되고 있기에 새롭게 읽혀진다. 눈의 속성에 기댄 사랑의 절실함이 절절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게다가 이 시에서 다루어지는 사랑은 의 환유로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유한한 생의 아름답고도 슬픈 패러독스를 환기한다. 

 

<시문학 20077월호 147-148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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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옥혜 시집 허공에서 싹 트다

  문덕수(시인예술원 회원) 

 

차옥혜(1984한국문학신인상 당선)의 제 8시집(?). 시전집을 합하면 제9시집. 작품은 꽃보다 눈부신 사람68. 이중에는 이라는 리얼리티가 강한 15편의 연작시도 포함되어 있다. 매우 쇼킹한 제목을 가진 이 시집은 단순한 서정시집으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폭넓은 현실적 제재들이 내포되어 있다. 양가(良家)의 규수형(閨秀型) 시인다운 평소의 거지(擧止)에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 시집은 작자 자신과 출신 가문(家門)의 전기(傳記)까지 편입되어 있어, 역사적 서사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허공에서 싹튼다는 제목은 고난의 시대를 극복한 한 서사까지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니힐리즘의 극복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시도 그렇다. 꽃보다 눈부신 사람에는 과 그 꽃을 추구하는 존재의 두 실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은 그리움의 궁극적 대상이다. 굶주린 소년과 독수리1). 자본의 블랙홀에 빠진 아프리카의 노예들(2)은 적나라한 현실의 한 단면이지만, 6.25당시 33세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행적은 꽃을 찾아 나서는 몸짓이다. 꽃보다 눈부신 사람속에 내재되어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시문학 20086월호, 188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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