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2

시 -1 2006. 5. 5. 14:52

 

  바람 2 

                                       차옥혜

 

네가 떠도는 것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머물면 너는 죽는 것을

떠나는 네 발을 끌어안고 싶다마는

모든 인연에

헤어짐 없는 것이 어디 있느냐

떠나 너는 너이고

머물면

이내 네 모습 사그러지니

네가 떠도는 것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저만치 떠나고 있는 네 뒷모습이

쓰라리고

아름답다

 

<시집 『발 아래 있는 하늘』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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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사람 1

시 -1 2006. 5. 5. 14:51

  

 흙사람 1

                                                         차옥혜

 

 

길을 가며

 

민들레와 씀바귀와 노루귀와 앵초와

이야기한다

활활 거리는 나비와 껑충대는 여치와

발발거리는 개미와 파르륵 대는 딱정벌레와

노래한다

물방개와 모래무지와 물옥잠과 물총새와

인사한다

옷깃에 스치고 먼발치서 풀썩이는 것만이

형제랴

발부리 자갈도 깊은 산 속 옹달샘도

정성껏 정갈하게 대접하며

땀흘려 사랑하며

길을 간다

 

<꿈과시  199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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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 -편지 1

시 -1 2006. 5. 5. 14:50

  

 고목  

             -편지 1

  

                                                                차옥혜

 

껍질만 남아 있던 사랑마저도 떠나고

뒤틀린 등과 저승꽃 핀 얼굴과

아무리 가리려 해도 다 드러나는

훵하게 뚫린 못 생긴 가슴만 남았습니다.

젊은 날 아름답던 그림자를 두고 온

그 언덕과 해변과 거리를

되새김질할 위장도 헐어버렸습니다.

온몸이 얼음덩이입니다.

나는 무엇을 보며 살아왔습니까.

이제 의지할 것은 내게 걷어채고 짓밟히면서도

내 불거진 뿌리를 꼭 잡고 버틴

당신뿐입니다.

그동안 내가 기댄 것은

바람벽이 아니라

당신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버리고

나마저 나를 버리고서야

나는 돌아갑니다

당신에게

나는 껴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 무엇인

침묵이면서 소리인

죽음인 듯하면서 생명이고 삶인

당신을

 

<시집 『흙바람 속으로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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