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향나무를 버릴 수 없다

                                                                    차옥혜

 

 

향나무 웃자란 가지를 치는데

순식간에 벌이 장갑 낀 손가락을 쏜다

손가락이 쿡쿡 쑤시고

손등이 부어오르고 팔뚝까지 얼얼해진다

그러나 벌집이 숨어있는 위험한 향나무를

나는 버릴 수 없다 떠날 수 없다

독이 오른 아픈 손으로

나는 다시 전지를 한다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불바다에 뛰어든 그

전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고

두 다리를 잃어버린 역무원 

 

사랑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구나

목숨을 거는 것이구나

사랑 있어

캄캄한 세상도 희망이 되는구나

 

화끈 화끈 쑤시는 내 손끝에서

벌집이 숨어있는 위험한 향나무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시와 정신  200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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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시증에 걸린 지구

                                                           차옥혜

 

 

지구의 눈에서 불빛이 번쩍거린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불빛에

무수히 많은 나뭇잎과 나비의 날개

데이고 타버린 것은

 

지금은 지구의 눈 한쪽 이스라엘과 레바논 상공에서

불빛이 번쩍거린다.

지구의 평화가 지구의 눈 속 유리체가

자꾸만 떨어져나가

마침내 지구의 망막이 벗겨져버리면

지구는 장님이 된다는데 암흑이 된다는데

 

검은 파리나 지푸라기나 점들로

허공을 떠도는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유령들

비문증 날로 더 심해지는 눈을

좌우로 돌릴 때마다 번쩍이는 불빛

 

광시증에 걸린 지구를 위하여

누가 울고 있는가 하얀 깃발을 흔들며

누가 가고 있는가 하얀 깃발을 들고

 

<올해의 좋은 시(한국시인협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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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손이 아파서

시 -2 2006. 10. 7. 23:40

     

유령 손이 아파서

                                                         차옥혜

 

 

손이 없는 사람이

없는 손이 아파서 울고 있다.

머리는, 몸은

이미 썩어버린 유령 손을

또렷이 기억하고 현실로 느끼며

아파하고 있다.

 

아픈 지난 일을, 어두운 역사를

고통 없이 뉘우침 없이

용서와 화해라는 이름만으로 덮어버린다면

아름다운 미래와 참된 삶도 없다는 것을

살아남은 몸은

본능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한 번 맺은 인연

죽었어도

생전의 고통

고스란히 물려받아

거듭거듭 대신 아파서

다시 살려내고 있는

뜨거운 사랑일까

 

잃어버린 그에 대한

한풀이일까

간절한 그리움일까

 

갈라선 마음, 억울한 넋

불러 모아 하나로 얼싸안아

싱싱한 생명으로 꽉 찬

온전한 몸 행복한 우주를 이루고 싶은

꿈을 부르는 주술일까

 

유령 손이 아파서

그가 울고 있다.

 

<문학사상  200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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