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강

                                           공광규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감상】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강인가! 이 강을 죽이다니! 강을 지켜야 한다.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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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양정자

 

있는 듯 없는 듯 선연한 손이 있어

저리 어여삐 떠받치지 않는다면

모두 고와 보이는 저 사물들은

정말 고와 보이리까. 藥손이여

 

  【감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켜주고 키워주고 꿈을 주는 약손이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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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안도현

 

새해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소서.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난데없는 불행으로 마음 졸이지 않게 하시고, 가진 게 많아서 신나는 사람보다는 가진 것만큼으로도 충분히 신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가 되더라도  '대박'의 요행 따위 꿈꾸지 않게 해주소서. 내 와이셔츠를 적시게 될 땀방울만큼만 돈을 벌게 하시고, 나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은 열정을 소비해온 지난날을 꾸짖어주소서. 부디 내가 나 아닌 이들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바라보던 이에게는 남의 자식의 구멍 난 양말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내 말을 늘어놓느라 남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파도 소리를 담는 소라의 귀를 주소서. 백지장처럼 맑고 높은 정신으로 이 풍진 세상을 견디게 하소서. 이땅의 젊은 아들딸들에게 역사는 멀찍이 서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프게 몸에 새기는 것임을 깨우쳐주시고, 늙고 병들고 나약한 이의 손등에 당신의 손을 얹어 이들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시간을 연장해주소서.당신의 힘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시고, 통하지 않는 것을 통하게 해주소서. 겨울 팽나무의 흔들리는  가지 끝과 땅속의 묵묵한 뿌리가 한 식구라는 걸 알게 하시고, 숲속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길과 사람 사는 마을의 골목길이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 당신이 괴롭지 않은 세상 일구게 하소서. 

 

  감상】 오늘은 2014년 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안도현 시인의 아름다운 '기도'를 거듭 듣는다. 가슴이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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