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화살나무에 빠져

                                                         차옥혜

가을이 깊다
화살나무가 활활 불타며
우주를 삼키고 있다
눈부시다 황홀하다

가을 깊은 나는 어느덧
불붙은 화살나무에 빠졌으나
불붙지 못하고 여전히
말라비틀어진 호박 줄기다

겨울이 오기 전 나도
한순간만이라도
화들짝 불타고 싶어라

겨울의 입구에서조차
불타는 화살나무이던
그 사람
찬바람에 맞서가며
허공에 불씨 날려
영원히 세상 울리는
시를 새기던 그 사람

불타는 화살나무야
가을 깊은 나에게
불 좀 붙여다오

 

                                                       <한국현대시, 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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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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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른 산등성이

                                                                    권 달 웅

아득히 먼 산등성이에
낮달이 걸렸다

벗어놓은 지게에
낫이 꽂혔다

희미한 낮달도 닳은 낫도
등이 휘어졌다

푸른 산등성이도 아버지도
등이 휘어졌다

낫은 창백하고
낮달은 애달프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산등성이는 가파르다

모두 등이 휘어지도록
무거운 짐을 졌다

가도가도 멀고 험준한
생의 비탈길

 

*** 눈물이 핑 돈다. 심금을 울리며 위로하는 시의 힘!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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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꽃

시 -5 2023. 1. 7. 15:17

개망초꽃

                                           차옥혜

 

백일홍, 원추리, 참나리, 장미
수국, 접시꽃, 범부채, 우단동자
한창인 초여름 꽃밭 틈 사이 솟아 핀
개망초꽃!
뽑아내려 다가오는 호미든 손

안돼!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 둬
내가 잡초꽃이라고? 보기 싫다고?
나도 하늘이 보내준 국화과에 속하는
노란 씨방을 품은 하얀 꽃이잖아
나 때문에 꽃밭 품위가 떨어진다고?

장애인 요양소가 이사 온다는 건물에
장애인들 이사 못 오게
제멋대로 폴리스라인을 치고
건물 옆에 천막 짓고 몰려 앉아
지키고 있는 건장한 주민들

 

                                          <시와문화, 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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