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맺은 호밀

시 -5 2022. 7. 10. 14:05

이삭 맺은 호밀

                                                          차옥혜

보아라
잎새 사이로 솟아 맺힌 이삭!
자랑스럽다 어여쁘다
겨우 사월 중순인데
대추나무 감나무 배롱나무
아직도 잠자고 있는데
줄줄이 솟아 춤추는 이삭이라니
우리 호밀 잎새들은
우리들의 깃발이며 목숨이고 영혼인
이삭을 우러르며 뽐낸다
오월 이삭이 여물면 타작하여
우리 호밀의 몸은 씨앗과 헤어져
지푸라기가 되겠지만
우리 호밀의 마음은 씨앗에 담겨
함께 영원으로 가는 기차를 타리
한 생을 잘 마무리한 우리 호밀은
뿌듯한 가슴 당당한 눈빛으로
생명의 송가를 씨앗에 새기며
종착역에 내려 또 한 생을 예비하리
장하다 아름답다
이삭 맺은 나여, 우리 호밀 나라여

 

                                                                   <시현실 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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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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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초 호밀 노래

시 -5 2022. 7. 9. 14:18

사월 초 호밀 노래

                                                    차옥혜

호밀 바다가 파도친다
나날이 힘차게 하늘로 치솟는
우리들의 푸른 행진 장엄하다
다른 식물들은 이제야 새싹이 돋는데
우리는 벌써 키가 석 자나 자라
바람에 물결친다 장관이다
내가 호밀인 것이 자랑스럽다
호밀 나라를 위하여
해, 달, 별이 뜨고 진다
초록 잎새 반짝이며
뿌듯한 삶을 노래하고 있는
나는 지금
무지무지 행복하며 기쁘다
바람의 사다리를 타고 하늘까지 가려니
어머니 대지가 푼수 짓 하면 죽는다고
들뜬 나를 꽉 부여잡고 다독인다
그렇다! 좋다!
비록 선 채로 한 발짝도 못 내딛지만
이만한 축복도 어디냐
나 호밀! 호밀 나라!
비록 선 자리에서만이라도
푸르게 푸르게 춤춘다

 

                                                  <한국현대시 2021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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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호밀

시 -5 2022. 7. 6. 14:27

봄 호밀

                                          차옥혜

봄이다
샛바람 분다
살았다 견뎌내었다 이겼다

가을에 눈떠 멋모르고 우쭐대다
폭설에 덮혀 얼음에 갇혀 죽음과 싸우며
혹독한 겨울을 통과한 자만이 느끼는
환희의 깊이와 높이를
봄날에 싹터 꽃샘추위에 벌벌 떠는 새순이
매화, 산수유, 수선화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겨우내 떨며 움츠리고 얼면서도
끝내 푸른빛 잃지 않은 작은 몸이
신기하고 대견하며 자랑스러워
제 이름 부르며 소리 없이 운다
신나고 기쁘고 기뻐서
제 어여쁨 소리죽여 노래한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좋아
봄날의 특권 아니냐
스스로 다독이며 힘 모은다

봄볕이 보약이다
겨우내 못 자란 키가
으쓱 솟는다
하늘까지 가보자
꿈꾸자 희망 품자

주변을 둘러보니 호밀 친구들의
상기된 눈빛 부푼 가슴
겨울을 함께 이긴 호밀들이
봄바람에 남풍에
샛바람에 꽃바람에
모두 함께 춤춘다
봄이다 봄날이다
호밀 만세

 

                                                    <산림문학,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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