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농사를 짓고 노래한 팔순 시인의 사계절
-차옥혜 시인의 시집 호밀의 노래를 읽고

                                                                                                  안준철(시인)

  요즘 숲에 자주 간다. 숲에 자주 가는 이유는 병 치료를 위해 다니는 병원이 숲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는 길에 숲에 들리곤 했는데 지금은 숲이 먼저고 병원은 다음이다. 숲에 갈 때는 배낭에 시집을 한 권씩 넣어간다. 기왕이면 치유의 효과가 있는 숲처럼 읽어서 영혼이 맑아지고 건강해지는 시집이 좋다.

  차옥혜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호밀의 노래(현대시학기획시인선) 1부는 가을 호밀 새싹, 겨울 호밀, 봄 호밀순으로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인이 심은 호밀은 봄날의 파종이 아니라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 심은 늦은 농사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파종한 씨앗은 이듬해 봄을 맞이하기까지 눈 감옥의 혹독한 겨울을 지나야 한다.

, , 입이 없어
길을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우리는 캄캄한 포대 속에서
빵이 될까 새 생명이 될까
얼마나 두려움에 떨며 가슴 졸였나

                                                           -가을 호밀 새싹부분

  호밀에게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 겨울이 닥치자 소슬바람 지나/ 찬바람 높바람 휘몰아쳐/ 뿌리를 옴싹달싹 못하게 하더니/ 폭설이 온몸 덮친다’. 호밀은 벌써 죽어야 하는가/ 가을에 겨우 태어났는데하고 탄식한다. 하지만 눈 감옥 여기저기/ 있는 듯 없는 듯했던 호밀은 미세한 푸른 핏줄로 서로서로 깨워/ 온기 나누며주어진 생명을 잘 지켜내고 이윽고 만유 소생의 봄을 맞는다.

가을에 눈떠 멋모르고 우쭐대다
폭설에 덮여 얼음에 갇혀 죽음과 싸우며
혹독한 겨울을 통과한 자만이 느끼는
환희의 깊이와 높이를
봄날에 싹터 꽃샘추위에 벌벌 떠는 새순이
매화, 산수유, 수선화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봄 호밀부분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호밀의 생애사다. 차옥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가을밭에 모처럼 호밀을 심었다. 호밀이 뿜어내는 강렬한 푸른 생명력은 내게 희망과 꿈을 꾸게 한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호밀의 노래는 이미 호밀만의 노래가 아닌 것이다. 시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코로나19에 기후 재앙까지 겹쳐 곳곳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무하는 노래다.  
  시인의 주의 깊고 성실한 관찰은 사월 초의 호밀, 이삭 맺은 호밀을 거쳐 풋거름에 이르는 호밀로 그 생장의 단계를 따라 이동한다. ‘풋거름이 된 호밀은 시인 농부가 내년의 풍작을 바라고 호밀밭을 뒤엎어버렸기 때문이다.

잘 익은 씨앗으로 영생하려던
우리의 꿈이 깨져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삶이 어디 뜻대로만 되든가
희망의 끈으로 마음 칭칭 감아
몸은 쓰러졌어도 마음 꼿꼿이 세워
비 맞고 햇빛에 삭아 푹푹 잘 썩어
내년에 뿌려질 어떤 씨앗에든 스며들여
세세연년 세상 푸르게 하리라
뭇 생명 먹이고 살리리라

                                                                     -풋거름이 된 호밀부분

  차 시인은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령이다 보니 건강 상태에 적신호가 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팔순 농부 할머니몸 움직일 때까지는/ 제 몸 아낌없이 내던져/ 흙에 땀을 흘려주는 것이/ 평생을 먹여 살려 준/ 흙에 대한 예의며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찌릿찌릿 불타는 손끝에서
마주치는 흙의 사랑이 좋아
한여름 뙤약볕에서
땀 하염없이 흩뿌리는
팔순 농부 할머니

                                             -흙에 대한 예의부분

  시집 2부와 3부에는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재난과 이와 무관하지 않은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참상과 우려의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시들이 주를 이룬다. 지구의 어머니 우주의 탄식, 카나리아가 운다, 위험한 호주의 야생 낙타, 죽은 주목 하얀 뼈의 묵시록, 코로나19의 하소연등 시 제목만으로도 세상을 걱정하는 노 시인의 눈빛이 느껴진다. 시인의 눈에 코로나19 감염병은 낮은 곳부터 휩쓸고 가는 감염병 홍수.

  공장 비행기 멈추고, 학교 호텔 등이 쉬자, 쏟아지는 실직자들// 이른 새벽 며칠째 인력시장에 나왔다 허탕 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날품팔이 가장의 발걸음// 낮은 곳부터 휩쓸고 가는 감염병 홍수

                                           -눈물 전염3-홍수전문

  같은 구치소 독방에 권력남용 뇌물죄로 수감 된 한 전직 대통령은 코로나19 음성이라도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

                                          -눈물 전염4-서울동부구치소부분

  시집 4부와 5부에도 세상에 대한 전방위적인 관심과 자연에 대한 세심한 촉각이 빚은 시편들이 눈에 띄지만 이제야 발바닥을 들여다보다, 하루하루가 선물이다, 가족의 빛, 등대가 그립다등의 자기 성찰과 가족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깃든 시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차 시인이 세상살이의 온갖 곡절에 가슴 조이며, 그 여린 감성을 동원하여 온전한 향방을 제기한 것은 그가 주는 사람의 책임에 충실한 사례라고 강조한다. 또한 시인의 순정한 서정성은 연약해 보이지만 기실 가장 완강한 힘이다.”라고 상찬한다.
  차옥혜 시인은 전주 태생이다. 시인의 고향 전주역 승강장엔 언제나/ 대학입학을 위해 처음 고향 떠나는/ 나를 배웅하는 젊은 어머니가 서 있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척이는 마음 숨기고/ 의연한 척 웃고 있는 나의 등을/ 말없이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꽃샘바람에 옷고름과 치마폭을 펄럭이는/ 매화 같은 어머니.
  차옥혜의 시는 따뜻하고 섬세하며 단단한 언어로 치유의 노래를 들려준다”(이경수 문학평론가)는 평을 받고 있다. 물 흐르듯 혹은 부드러운 흙을 매만지듯 무리 없이 전개되는 자연스러운 문장들을 읽다 보면 마치 숲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시인에게도 소녀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소년도 있었다.

소녀적 이른 아침 다락방 창문을 열면
냇물 건너편 둑에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소년
서로 멀리서 바라만 봤어도
바람과 시냇물에 실어
소리 없이 주고받던
설레는 말들
학교에 늦을까 봐 곧 창문을 닫으며
꽃이 되던 나

                                               -보고 싶다부분

  차옥혜 시인은 내가 유일하게 누님이라고 부르는 시인이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완전히 물러가고 시인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인 전주역에서 지금도 소녀 같으신 백발 노시인을 뵐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 202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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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 마음 속의 시                     

                                                                나기철 (시인)

모랫벌   

                                                        차옥혜

바위산이 무너져 누웠다.

차돌멩이 나도
자갈인 너도
부서져 부서져
조개와 게들이 집을 짓고
소라가 소리치고
물새가 알을 묻는 모랫벌 되자

밀물과 썰물에 씻기고 닦여
밤하늘 은하수에 별로 뜨리니

부서지고 깨어져
알몸으로 체온을 나누며
밟으면 패여서 발등을 덮어 주고
딩굴면 밀리는 듯 안아 주고
바람 불면 더 큰 하늘 더 큰 바다의
비둘기 떼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 발 닿고 싶어하던
모랫벌 되자  

   1986430일 발행이라 쓰여 있다. 차옥혜의 첫 시집 깊고 먼 그 이름뒤쪽에. 그 무렵은 전국이 연일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들끓고 있었다. 박종철 군 고문 사건, 강경대, 이한열 군 사망 사건이 줄을 이었다. 비정통의 군사 정권에 대한 저항은 거셌다. 그런 통제적 상황은 학교에도 예외 없이 작용하고 있었다. 교육은 유신 때처럼 정권에 예속돼 있었고 자유롭게 학생들을 가르칠 분위기가 아니었다. 땅 아래선 교육 민주화 운동의 용트림도 있었는데 군데군데서 어쩔 수 없이 용출하기도 했다.  
  30대 초반, 나도 자유롭지 못했다. 여린 내 영혼은 얼어붙은 사회와 입시 위주의 교육과 아직 정착되지 않은 집 분위기로 힘겨웠다, 마인드 컨트롤이니 요가니 단전호흡이니 하는 델 기웃거리고 각종 영성, 명상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몸과 마음의 평화를 찿아. 그 두 해 전 아내와 같이 가톨릭의 영세도 받았다. 이곳의 문우들과 동인지 경작지대를 결성하여 한 해 한 번 동인지를 내었다. 그게 큰 위안이었다. 교무실 내 책상에 앉아 그 신경성의 시인을 생각하며 문학과 지성사 간 큰 책 '보오들레르를 읽기도 했다.
  시집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가히 시의 시대였다. 그런 와중이었을 것이다. 차옥혜란 시인의 첫 시집 깊고 먼 그 이름이 있었다. 시집 앞엔 고은 시인의 극찬에 가까운 발문이 실려 있었다. 나는 오로지 고은 시인의 이 글을 통해 이 시인의 시를 읽게 된 셈이었다. 단시가 많았다. ‘나는 이 시집 깊고 먼 그 이름에서 내가 무던히 좋아하는 시가 20편도 더 넘는 사실에 놀란다. 큰 수확이다. 이 시집은 집념을 가진 사람에 의해 모색된 세계의 여러 형태가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봄 가을 겨울 따위의 상투적인 계절 감각과 함께 반복되는 이미지들의 구사로 하여금 시 하나 하나의 고유성을 약화시키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집에서 20편 이상의 빛나는 결실이 그것을 읽는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일이란 신인의 성과로는 드물기만 하다.’ 이 시집의 시들은 그녀가 서독에서 병상에 있을 때 쓴 것들이라 한다. 어찌 어찌 고은 시인에게 원고가 전해진 것을 그가 한참 만에 읽고 세상에 소개한 것 같았다.
   모랫벌을 보자. ‘바위산이 무너져 누웠다. 너도 나도 부서져 모랫벌 되자는 이 도저한 상상력, 자신을 극단으로까지 몰고 가 보지 않고서는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다. 그녀는 아마도 이런 극단의 허무와 절망 속으로 자신을 내동댕이쳐 보았을 것이었다
  나도 그랬다. 그 때 나는 학교 도서실 창가에서, 짓눌려오는 머리와 그 혼미함을 안고 한라산을 자주 바라보았다. 언제나 어질어질했다. 벽에 머리를 부딪혀 보기도 했다. ‘몇 년 동안이나 힘써 넘으려 했던/ 저 푸른 산/ 이제는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겠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겠습니다/ 로 넘지 못하더라도/ 그 너머 아름다운 들판 있다 해도/ 무쇠비 오더라도/ 넘으려 허우적거리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겠습니다’(졸시. ‘푸른 산전문)   이 시집 앞에는 시집의 표제 시 서시-개구리가 실려 있다. ‘불 붙은 목으로/ 사무쳐 부르는 이름/ 부르는 이름에/ 신이 들려서/ 밤새도록/ 너를 부른다./ 네 목숨 위에 있는/ 깊고 먼/ 그 이름을’. 그 이름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는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

* 차옥혜(1945-) 전북 전주 출생. 전주여고, 경희대 영문과 졸. 1984한국문학신인상 당선. 시집 깊고 먼 그 이름’(1986) .

                                                                                      <2002년 제주국제정보원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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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선물이다

                                                      차옥혜

아침에 눈을 뜨면
새날을 볼 수 있음이 기쁘다
나이 팔십이 가까워지자
찾아오는 하루하루가
실로 가슴 벅찬 선물이다
황송하고 감사하여
두 손 모아 절하며 받든다
창문에 와서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린
먼동 트는 새벽하늘은
아니 폭풍이나 비를 몰고 온
아침 하늘조차도
반갑고 반갑다
살아서 볼 수 있는
오늘은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하며
거룩한 축복인가

                                       

                              <한국작가회의 시분과 사화집, 202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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