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의 순례자
차옥혜
말의 종족으로 태어난 행운으로
귀가 열리자마자 말 세례를 받아
말로 나는 자라고 세계를 얻었다
말로 천 년 전후 사람도 만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산다
그러나 내가 아는 말은 참 말의 일부
높고 깊으며 광활한 말의 우주에서
빛나는 별들의 근원과 신비를 찾아가는
나는 말의 순례자
말의 어머니를 만나면
생 노 병 사를 뛰어넘는
비밀 통로를 보리라
그러나 내 걸음은 점점 더 더디어가
끝내 말의 고향에 이르지 못해도
나는 진실, 생명, 평화, 사랑이 담긴
말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산
말의 힘을 믿고 의지하며 산
끝끝내 말의 순례자임을
기뻐하리라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