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은

시 -4 2021. 4. 30. 14:39

사람만은

                                    차옥혜

 


백합, 노루오줌, 범부채 곁에
나무쑥갓을 심었더니
나무쑥갓이 왕성한 번식력으로
빈틈없이 새끼를 치며
백합, 노루오줌, 범부채를
침략하여 덮어버리고 고사시켜
어느덧 나무쑥갓만의 왕국을 이루었다

풀꽃들 뿐이랴
평화롭고 순해 보이는 큰 나무들도
땅 밑에선 뿌리들 끼리
치열하게 영토싸움을 한다

동물 세계는 더더욱
강자만이 꽃이 되는 세상이라지만
사람만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 내려놓고
약한 사람 앞에 고개 숙인 벼가 되고
종이 다른 뭍 생명에게 언덕이 되며
모든 목숨이 함께 살고 승리하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

                                         <문학과창작, 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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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의 순례자

시 -4 2021. 4. 30. 14:27

나는 말의 순례자

                                          차옥혜


말의 종족으로 태어난 행운으로
귀가 열리자마자 말 세례를 받아
말로 나는 자라고 세계를 얻었다
말로 천 년 전후 사람도 만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산다
그러나 내가 아는 말은 참 말의 일부
높고 깊으며 광활한 말의 우주에서
빛나는 별들의 근원과 신비를 찾아가는  
나는 말의 순례자 

말의 어머니를 만나면 
생 노 병 사를 뛰어넘는 
비밀 통로를 보리라
그러나 내 걸음은 점점 더 더디어가
끝내 말의 고향에 이르지 못해도 
나는 진실, 생명, 평화, 사랑이 담긴
말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산
말의 힘을 믿고 의지하며 산
끝끝내 말의 순례자임을 
기뻐하리라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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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시 -4 2021. 3. 6. 13:29

초록빛

                                 차옥혜

 

눈밭을 뚫고 솟는 상사화 

매화 개나리 목련 꽃 진자리에 돋는

굵은 가지 통째 잘린
늙은 감나무 몸통에서 튀어나온

들을 품고 산을 껴안는
잎새들의 간절한 포옹

어머니의 눈, 가슴,


생명을 낳고 기르고 지키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사랑의 숨결
초록빛은
어디서 오나
누가 보내나

                                 

                                        (한국현대시, 2020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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