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십자가, 영원한 횃불

                                                   차옥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외치며 유명무실한 근로기준법 책을 들고
스물두 살 젊음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는
청계천의 십자가!
이 나라 노동자들을 지키고 일깨우는
영원한 횃불!

50여 년 전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보조원으로 취직하여 재봉사가 된 전태일은
90퍼센트가 여성인 이만여명 노동자들 중에
40퍼센트인 13세에서 17세 어린 소녀 보조원들이
다락방 형광등 밑에서 하루 14시간
먼지를 들이마시며 일하다가
폐질환에 걸리는 게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백 볼트 전등 한 개를 더 켜달라고
신선한 바람이 흘러드는 창문 하나 달아달라고
일요일엔 쉬게 하고 정확한 건강진단을 해달라고
70원에서 100원인 일당으로는 기진맥진
배고파 죽겠으니 반절만 더 올려달라고
업주에게 하소연하고 노동청에 진정하며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도 묵묵부답 마이동풍
마침내 말썽꾸러기라고 공장에서 쫓겨났으나
가엾은 어린 노동자들 못 잊어 다시 돌아와
자신의 몸에 불을 지펴 어두운 세상을 밝힌
전태일 열사는
언제 어디서나 이 나라 노동자들 마음에
영원히 살아 힘과 용기를 주는
청계천의 십자가! 영원한 횃불!

 

        <푸른사상,  2020년 봄호  -전태일 열사 50주년 기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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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햇빛 밝은 길에 내가 있다

                                                  차옥혜

눈부시게 환한 시월 길에
내가 있다
햇빛이 나와 길을 껴안는다
햇빛이 반짝인다 내 몸에서
햇빛이 반짝인다 길에서
내가 반짝인다 햇빛 속에서
길이 반짝인다 햇빛 속에서
시월 햇빛 쏟아지는 길에
내가 살아 있는
축복이여
기쁨이여
내가
시월 햇빛의 꽃이 되는
순간이여
시월 햇빛이 내게 스민다
내가 시월 햇빛에 스민다
내가
시월 햇빛에서 빛이 되는
찰나여

                                  <예술가 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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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차옥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차가 오가는
좁은 시장 길가에 비닐을 깔고
, 부추, 풋고추, 돌미나리, 상추를 팔던
할머니가
싸온 찬 점심을 무릎에 올려놓고
흙물 풀물 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

목숨을 놓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손
찬 점심을 감사하는
저승꽃 핀 여윈 손
눈물이 핑 도는 손
꽃 손
무릎 끓고 절하고 싶은 손 

나는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시문학, 200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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