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흘리고 있는 시인의 눈물

                                                                                우정연(시인)

별일 없지?
다음 주에 네가 좋아하는 가을하늘
함께 보자
대학원 다니는 손자가 연구비를 탔단다
네가 보낸 국화화분이 나에게 말을 한다
밥 잘 먹어라 건강이 최고다

이틀 전에 전화를 걸어온 사람
갑자기 쓰러져
추모공원 화장장
유리벽 안쪽 벽지 위에
유골로 놓여 있다

저 유골과 나 사이의 간격은
한 발짝이 될까 말까 한데
수만 리 저편 꿈속처럼 아련하다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통곡해도
유골을 에워싼 적막이 너무 깊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한 발짝전문

  차옥혜 시인의 언어에서는 그물코가 잘 짜인 직물처럼, 다양한 자연 현상과 우주 만물을 두루 아우르는 정교함이 두드러진다. , 햇살, 나무, 참깨, 직박구리 등을 다채로운 각도에서 따뜻하게 넘나드는 시선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 김구 선생, 아마존, 미세먼지까지 점차적으로 넓혀가는 사유의 확장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 중심엔 항상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시선과 사랑이 있고 자연 속에서 더불어 인간 중심의 세상이 펼쳐지기를 꿈꾼다.
  문학평론가 이숭원 교수께서는 해설에서 밝히시길 시인은 자연을 통해 자신의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는 데 주력해 왔으니” “자연은 동일화의 맥락 속에 시인의 이상을 대신 실현하는 상징의 사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렇듯 시인은 자연 속에서 참깨를 털며 새집을 지어 주고 주목나무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신비를 찾아가는 말의 순례자임을 기뻐하며 충만한 삶을 실천하는 중이다.
  하늘 높은 어느 가을날, 다음 주에 만나자는 전화 약속을 한 친구가 있다. 시인은 손자가 연구비를 타서 할머니께 보내준 용돈을 가장 친하고 귀한 친구와 함께 밥 먹고 차 마시며 가을을 품어보자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 그런 친구가 황망하게도 이틀 만에 죽어 유골로 안치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해방둥이 시인이 이 나이쯤 살아오는 동안 어찌 별별 일들을 다 보고, 겪고, 느끼지 않았을 것인가. 삶과 죽음이 비록 한 발 차이로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이런 이별은 참으로 억장 무너지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이별일 것이다. 귀한 친구를 잃고 눈물과 통곡도 사치인 듯 깊은 적막 속에 들어가 버린 시인의 심정이 마치 싯다르타 태자가 사방의 문으로 나가, 중생이 겪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보고 무상함을 깨달아 출가를 결심한 사문유관상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삶이란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생과 사가 어우러져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인 경계 없는 경계를 한 발짝이라 생각한다.
  시인은 1945년 전주 태생으로 경희대학교 영문과와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깊고 먼 그 이름12권으로 이번에 말의 순례자를 발간하였다. 시인은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근래에 산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인의 시집을 차분히 읽노라면 후반부로 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동백꽃이 활짝 피기도 전에/ 칼바람에 눈밭에 떨어져 떨어져/ 땅이 울고 하늘도 울고 있는 곳/ 여기는 어디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을 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 김용균씨의 죽움을 쓴 위 시여기는 어디인가에서도 그렇듯이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찾아든다. 시인이 추구하는 이상은 높은데 바닥에 납작 엎드려 흘리고 있는 시인의 눈물이 얼룩진,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필자는 기어이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긍정적인 생의 자세와 여린 심성, 섬세함이 함께하는 시인의 가슴이 비정규직 김용균의 어머니에게 사과하고, 직박구리 새끼들에게 사과하고, 배기온실가스로 무너져 내리는 빙하에게도 사과하고, 플라스틱에 죽은 향유고래에게 사과하고, 아마존 열대 우림에게도 사과를 하면서 산비탈에 선 나무들에게는 끗끗하게 잘 살라고, 행동하는 소녀 시인 그레타 툰베리에게는 잘살고 있다고 격려의 큰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시인께서는 이후의 생도 한순간 허실 없이 끗끗하게 한 방향으로 걸어가리라는 생각이다.

                                                     

                                                               <문학과창작, 2021년 여름호, 281-283쪽>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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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게야 발바닥을 들여다보다

                                                                                         차옥혜 

  막 출판한 열세 번째 시집 말의 순례자를 친지들에게 보내는 작업을 마치고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직 바람 차지만 햇볕은 따스하고 언뜻언뜻 개울가에 줄지어 선 수양버들 줄기에 연두 빛이 얼비치는 듯했다. 윤슬이 반짝이는 냇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오리, 물닭, 원앙새와 먹이를 노리고 서 있는 백로, 그리고 길가 누런 풀밭에서 풀씨를 쪼는 비둘기와 까치가 나에게 생동감을 안겨주었다. 봄이 가까이 오고 있는 풍경에 빠져 나는 이른 봄꽃이 되었다. 그때 굵은 모래가 들어간 듯 오른쪽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운동화를 벗어 털어냈다. 다시 걸으니 또 불편했지만 견디며 1시간 넘게 바람을 쏘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발이 조금 아픈 것 정도는 늘 이렇게 무시하고 살았다
  밤에 두어 시간 자다 오른쪽 뒤 허벅지에 통증이 느껴져 깨었다. 진통제를 먹고 곧 겠지 하며 기다리다 주말이라 병원 갈 시간을 놓쳤다. 점점 더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정확한 증세를 알기 위해 진통제를 중단했다. 걸으면 좀 통증이 덜한 것 같아 걸으니 발바닥에 가시가 있는 것 같아 양말을 뒤집어보고 실내화를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월요일이 되어 척추 신경에서 오는 통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름난 척추 전문 병원을 찾아갔다. 관절센터와 척추센터에서 각각 엑스레이를 촬영한 후 허리와 다리를 살펴본 두 의사 선생님은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들은 명절 연휴가 끼었으니 우선 7일 동안 진통소염제와 신경통 약을 먹어보고 낫지 않으면 정밀검사를 하자고 했다. 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다시 병원 가기로 한 전날 우연히 발바닥을 만져 보니 우둘투둘 한 게 손끝에 느껴졌다. 그제야 발바닥을 들여다보니 불그레한 발진들이 돋아 있. 10년 전 대상포진을 석 달 앓았고 그 후 대상포진 예방주사도 맞았는데 또 대상포진일까? 이번에는 피부과 병원을 찾았는데 대상포진이라 했다. 막상 피부과에 갈 때는 통증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7일 동안 대상포진 약 먹고 발진에 세균 감염 막는 연고를 바르니 완전히 통증이 사라졌다. 의사 선생님은 예방 백신을 맞아서 비교적 빨리 나은 거라고 했다.
  왜 나는 가장 먼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낸 발바닥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사코 허벅지와 장단지만 부여잡고 끙끙대었을까. 평생 대접 못 받고 제일 밑바닥에서 아파도 걸으라면 걷고 변함없이 나를 떠받친 발바닥! 나는 너무 늦게야 들여다본 발바닥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하다가 문득 사람살이를 떠받치고 있는 이 세상 발바닥을 돌아본다. 눌려 아파도 힘들어도 숨죽여 일하며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이 일 년을 넘게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때, 내가 오늘 무사히 존재할 수 있음은 불철주야 헌신적으로 일하는 관계 공무원들과 의료진들 덕분이다. 어떤 간호사님은 코로나19 중환자실에 근무하면서 일 년 넘도록 세 명의 어린 자녀들을 보지 못했다고 눈물짓지 않던가! 또 무수한 택배 노동자들이 내 집 앞까지 먹거리를 가져다주어 내가 안전하게 살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폭주하는 택배 물량 때문에 과로로 여러 명의 택배 노동자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지난겨울 엄동설한에는, 21조로 일해야 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년 전 한밤중 혼자 낙탄 작업을 하다 기계에 빨려들어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니가, 더 그렇게 세상 자식들을 죽게 할 수 없다고 국회 본관 앞 길바닥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근 한 달 동안 단식농성을 했다. 그는 안전장치 없이 일 시키는 사업주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 없이는 매년 산업현장에서 2,400여 명이 죽고 10만여 명이 부상하는 행렬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절규했다
  이 나라에서 멀쩡하게 일하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매일 7명씩이나 되다니! 작업 발판, 안전난간, 추락방지망이 없는 일터에서 사람 꽃들이 일하다가 떨어져, 끼여, 부딪혀, 깔려, 무너져 죽다니! 위험작업에 ‘21규칙 안 지킨 회사 때문에 혼자 일하다가 죽다니! 사람 목숨보다 방호 장비 비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인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고 7대 수출 강국이며 케이팝, 케이방역 등으로 국제적 위상이 높은 나라 대한민국에  걸맞게 이제는 사람들이 누구나 안전한 일텨에서 일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희망을 품으며 살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이 뒷받침하여야 하겠다.
  너무 늦게 이제야 내 발바닥과 세상 발바닥을 들여다본다.

 

                                                                      <리더스에세이, 2021년 봄호>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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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누가 사나

시 -4 2021. 5. 26. 18:25

내 안에 누가 사나

                                                  차옥혜

 

오십 마리도 넘는 거대한 쥐가오리 떼가
바다에서 5미터 높이로 한꺼번에 뛰어오른다
뛰어올라 새 날개처럼 양쪽 몸 끝을 흔들며
다시 바다 속으로 내려온다
몇 번이나 다시 뛰어오르기를 반복한다
적이나 기생충을 만나면 피하느라
바다 밖으로 빠져나오는
생존을 위한 급박한 몸짓이라는데
그 모습이 경이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쥐가오리들이 펼치는 행위예술 같다
죽을힘을 다하여 뛰어오르는
숨 막히는 그들의 절박한 순간이
자꾸만 더 보고 싶은 장관이다

옛날 로마 민가에 일부러 불을 지르고
불구경을 하며 시를 썼다는
폭군 네로가 내 가슴에도 살고 있는가

쥐가오리들아
미안하고 미안하다

 

                                     <동국시집,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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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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