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운다 시인이 운다

박찬일(시인/평론가)

 

매미가 운다

 

 

우렁우렁 산을 무너뜨리고 있는

굴삭기와 싸우며

매미가 운다

 

매미가 울어

곤두박질치는 나무에게

겁에 질린 풀잎에게

무너지는 흙더미에게

다가간다 함께 한다

 

매미가 운다

뙤약볕을 흔들며

굴삭기 소리를 깨뜨리며

굴삭기 소리에 혼절한 새들을 깨우며

매미가 운다

 

우는 매미여 시인이여

차옥혜(1945- ) [매미가 운다]

 

매미가 운다. 시인이 운다. 산을 무너뜨리고 있는 굴삭기 소리에 맞서서 매미가 운다. 시인이 운다. 매미가 운다. 시인이 운다. 곤두박질치는 나무를 위해, 겁에 질린 풀잎을 위해, 무너지는 흙더미를 위해, 혼절한 새들을 위해 매미가 운다. 시인이 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운다.

두 개의 알레고리. 첫째,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도구적 인간 homo faber 에 대한, 혹은 도구적 인간이 만든 현대문명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굴삭기, 굴삭기 소리. 둘째, 이러한 굴삭기, 굴삭기 소리에 맞서 싸우는 시인, 혹은 시인의 사명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매미, 매미의 울음소리. 언제 궁핍한 시대가 아닌 때가 있었던가. 언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울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중심과 함께 하는 자는 시인이 아니다. ‘과 함께 하는 자는 시인이 아니다. 변방에 있는 자가 시인이다. 반대하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자가 시인이다. 나무, 풀잎, 흙더미, 새 등 연약한 것들과 함께 하는 자가 시인이다. 굴삭기 소리와 매미 울음소리를 대비시켜 시인의 사명을 새삼스럽게 환기해낸 매우 탁월한 시!

 

<군포시민신문 2001.6.5., 16쪽 수록>

 

 

  

    생태주의 문학 시론試論

박찬일(시인)

 

 

댐 건설 및 도로 건설 등은 자연에 대한 인간 우위를, 혹은 다른 생명에 대한 인간 우위를, 다른 말로 하면 인간중심주의의 폐해를,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예. 댐과 도로 건설로 얼마나 많은 자연이 훼손되었는가. 식물들이 멸종되었는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죽거나 자신들의 터전에서 쫒겨났는가. 다음은 차옥혜 시인의 매미가 운다라는 시.

 

우렁우렁 산을 무너뜨리고 있는

굴삭기와 싸우며

매미가 운다

매미가 울어

곤두박질치는 나무에게

겁에 질린 풀잎에게

무너지는 흙더미에게

다가간다 함께 한다

 

매미는 울어

굴삭기에 맞서

굴삭기 소리에 떠서

굴삭기 소리를 치받는다

 

매미가 운다

뙤약볕을 흔들며

굴삭기 소리를 깨뜨리며

굴삭기 소리에 혼절한 새들을 깨우며

매미가 운다

우는 매미여 시인이여

 

노만 커슨즈는 인간들이 국가에 귀속되고 국가 구성원들인간들의 생존을 염려하는 일을 떠맡게 된 후, 인간들은 스스로를 보존본능Erhaltungsinstinkt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오늘날의 인간들은 인류의 일에 직접 마음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는 아스팔트, 댐을 만드는 국가이고, 핵폭탄을 만드는 국가이나, 개개인은 그것이 인류의 환경 및 생존에 끼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커슨즈는 개인이 생존본능을 다시 되찾아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국가보다 인류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개의 알레고리. 첫째,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도구적 인간homo faber에 대한, 혹은 도구적 인간이 만든 현대문명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굴삭기, 굴삭기 소리. 둘째, 이러한 굴삭기, 굴삭기 소리에 맞서 싸우는 시인, 혹은 시인의 사명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매미, 매미의 울음소리. 언제 궁핍한 시대가 아닌 때가 있었는가. 언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아닌 때가 있었던가. 언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울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시민문학(군포문인협회) 2002년 여름호 25-26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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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김준태(시인)

     기도 2

                          차옥혜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만 아니라

패배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불붙고 맞아서 제구실하는

대장간 쇠붙이를 저는 압니다.

 

  도대체 차옥혜는 누구인가? 나는 그녀를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녀의 시가 무서운 감동으로 가득 차 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우선 그녀의 시 <기도 2>를 읽어보자. “기쁨만 아니라/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로 시작해서 희망만 아니라/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까지 읽어 내려가다가, 그만 나는 내 온몸과 정신이 찌르르 아찔해짐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 어떤 고압선에 달라붙어 스파이크가 돼버린 것처럼. 내가 차옥혜의 시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을 뒤늦게 야 알게 된다. “승리만 아니라/패배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노래하다가, 이윽고 당차게 불붙고 맞아서 제구실하는 대장간 쇠붙이를 저는 압니다라는 결구는 이 시를 한껏 절창으로 만들고 있다.
  그럼 <기도 2>를 쓴 차옥혜는 누구인가. 그녀의 첫시집 깊고 먼 그 이름뒷켠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1945년 전주 출생으로 전주여고와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유학길에 오른 남편을 따라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을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힘든 병을 얻고 만다. 낯선 이국의 병동에서 투병을 계속해야만 하는 코리아의 가냘픈 여인. 유난히 밤이 빨리 찾아오고 구죽죽한 비마저 자주 내리는 독일의 겨울. 그 낯선 어둠의 한 복판에 누어 병과 싸우면서 그러나 그녀는 시를 만난다. 그 결과 <기도 2>와 같은 시가 탄생한 것이다.
  “기쁨만 아니라/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따위는 누구한테나 함부로 찾아오는 그런 시구이며 깨달음이 아니다. 수많은 밤을 앓아 본 사람한테나 찾아오는 그런 시구이며 깨달음이자 사랑이다. 아니 그 아픔과 사랑함의 승리가 아니랴.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살고 있는 차옥혜 시인의 건투를 빌고 싶다.

                                         <사랑의 변주199922-23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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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시평

한만수

 

신인은 아니지만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시인의 것 중에서 차옥혜의 세상엔 노아의 방주가 없다(함께 가는 작가,7. 전문 인용) 같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아파트 7층이면/아무리 장대비 쏟아져도/걱정 없을 것이라고 안심했는데/한밤중 거실 베란다 빗물 오수관에서/물이 쿡쿡 솟아오른다/빗자루와 플라스틱 바가지가 둥둥 떠다닌다/창 밖으로 물을 계속 퍼내도/괴물 같은 물이 자꾸만 불어난다/한밤중 7층 아파트가 침몰한다/내가 빠진다 가족들이 첨벙거린다/다급하게 사방을 휘돌러보니/검은 얼굴로 웃고 있는 웅덩이뿐이다 

한밤중 10여 미터 상공에서 침수되는 아파트라. 그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우리 문명이 쌓아올린 바벨탑의 붕괴 조짐을 시사해주는 좋은 보기이다. 보다 현실적인 보기라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다. 거대한 도회의 문명의 이기들은 그것이 인간의 제어를 벗어나는 순간 거대한 흉기로 탈바꿈한다. 누구 말대로 우리는 문명이라는 화산 위에서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진 우려가 큰 곳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놓고도 무사태평이라는 섬뜩한 뉴스를 마침 들으면서 이 작품은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비록 결귀에 힘이 모자라고 생각이 더 나아갈 수도 있을 텐데 싶어 아쉽지만, 도회적 삶의 부화함을 적실하게 찍어내 보여주는 경기관총 같은 가편이다.

 

<시와 사람 1997년 가을호 245-246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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