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김준태(시인)

     기도 2

                          차옥혜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만 아니라

패배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불붙고 맞아서 제구실하는

대장간 쇠붙이를 저는 압니다.

 

  도대체 차옥혜는 누구인가? 나는 그녀를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녀의 시가 무서운 감동으로 가득 차 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우선 그녀의 시 <기도 2>를 읽어보자. “기쁨만 아니라/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로 시작해서 희망만 아니라/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까지 읽어 내려가다가, 그만 나는 내 온몸과 정신이 찌르르 아찔해짐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 어떤 고압선에 달라붙어 스파이크가 돼버린 것처럼. 내가 차옥혜의 시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을 뒤늦게 야 알게 된다. “승리만 아니라/패배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노래하다가, 이윽고 당차게 불붙고 맞아서 제구실하는 대장간 쇠붙이를 저는 압니다라는 결구는 이 시를 한껏 절창으로 만들고 있다.
  그럼 <기도 2>를 쓴 차옥혜는 누구인가. 그녀의 첫시집 깊고 먼 그 이름뒷켠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1945년 전주 출생으로 전주여고와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유학길에 오른 남편을 따라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을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힘든 병을 얻고 만다. 낯선 이국의 병동에서 투병을 계속해야만 하는 코리아의 가냘픈 여인. 유난히 밤이 빨리 찾아오고 구죽죽한 비마저 자주 내리는 독일의 겨울. 그 낯선 어둠의 한 복판에 누어 병과 싸우면서 그러나 그녀는 시를 만난다. 그 결과 <기도 2>와 같은 시가 탄생한 것이다.
  “기쁨만 아니라/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따위는 누구한테나 함부로 찾아오는 그런 시구이며 깨달음이 아니다. 수많은 밤을 앓아 본 사람한테나 찾아오는 그런 시구이며 깨달음이자 사랑이다. 아니 그 아픔과 사랑함의 승리가 아니랴.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살고 있는 차옥혜 시인의 건투를 빌고 싶다.

                                         <사랑의 변주199922-23쪽 수록>

 

Posted by 차옥혜
,

 

    계간시평

한만수

 

신인은 아니지만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시인의 것 중에서 차옥혜의 세상엔 노아의 방주가 없다(함께 가는 작가,7. 전문 인용) 같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아파트 7층이면/아무리 장대비 쏟아져도/걱정 없을 것이라고 안심했는데/한밤중 거실 베란다 빗물 오수관에서/물이 쿡쿡 솟아오른다/빗자루와 플라스틱 바가지가 둥둥 떠다닌다/창 밖으로 물을 계속 퍼내도/괴물 같은 물이 자꾸만 불어난다/한밤중 7층 아파트가 침몰한다/내가 빠진다 가족들이 첨벙거린다/다급하게 사방을 휘돌러보니/검은 얼굴로 웃고 있는 웅덩이뿐이다 

한밤중 10여 미터 상공에서 침수되는 아파트라. 그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우리 문명이 쌓아올린 바벨탑의 붕괴 조짐을 시사해주는 좋은 보기이다. 보다 현실적인 보기라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다. 거대한 도회의 문명의 이기들은 그것이 인간의 제어를 벗어나는 순간 거대한 흉기로 탈바꿈한다. 누구 말대로 우리는 문명이라는 화산 위에서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진 우려가 큰 곳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놓고도 무사태평이라는 섬뜩한 뉴스를 마침 들으면서 이 작품은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비록 결귀에 힘이 모자라고 생각이 더 나아갈 수도 있을 텐데 싶어 아쉽지만, 도회적 삶의 부화함을 적실하게 찍어내 보여주는 경기관총 같은 가편이다.

 

<시와 사람 1997년 가을호 245-246쪽 수록>

 

Posted by 차옥혜
,

 

    대중문화 시대의 서정(抒情), 그 전망의 시학

오성호이경철김용희심선옥김진희

 

이 계절의 좋은 시

차옥혜.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내일을 여는 작가56)

 

갑자기 소낙비 쏟아져/ 길 가던 사람이//늙은 느티나무 훵하게 삭은 몸통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50여 년 사막을 건너다보니/ 내 뼈에 구명이 숭숭 뚫려/ 바람이 집을 짓고 새떼가 날고/ 강물이 흐르고 풀들이 흔들린다/ 사람들이 춤을 춘다.// 한 아주머니가 애 낳은 딸에게 고아주려고/ 늙은 호박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속이 텅 빈 것을 고르고 있다.

차옥혜<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위의 시에서 늙은 느티나무와 구멍이 숭숭 뚫린 내 뼈, 그리고 속이 텅빈 늙은 호박은 모두 소멸을 향해 가는 사물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이 간직한 덕목들을 주시한다. 느티나무는 늙었으되 그 자신의 몸으로 사람들을 보듬는다. 나 또한 사막 같은 삶을 살다가 소진된 상태이다. 그러나 자신이 비워졌을 때 시인은 비로소 충만한 자연인이 됨을 깨닫는다. 마찬가지로 늙고 텅빈 호박은 새로운 생명 잉태를 위해 자신의 몸을 한껏 비워야 한다. 이는 소멸을 통해서만이 충만해질 수 있다는 역설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에 내재한 긍정적 의미들에 주목할 때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삶도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 1997년 가을호 15, 55쪽 수록>

 

Posted by 차옥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