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넘치면 독이 되나 봐

                                                            차옥혜

 

 

비정규직으로 떠돌다

오래 만에 집에 들른 노총각 아들

한밤중 인기척에 깨어 보니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토하네

 

공중 줄타기 같은 일자리에 시달려

밥 제때 제대로 못 챙겨 먹어

마른 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밥과 국 듬뿍 담아

밥상을 차려주며

밥 많이 먹어라 밥이 힘이다

라는 말 주문처럼 되풀이 하는 것

 

고달파 줄어든 위로

에미 기분 좋게 하려고

억지로 많이 먹어 체했나

 

아들 몸과 마음 살찌우려다

되레 병만 준 에미

속수무책으로 가슴 쓰라린 밤

 

  < 한국시학,  2017년 여름호>

 

'시 -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빈손은 무엇을 노래해야 하나  (0) 2017.06.27
바다 앞에서  (0) 2017.06.24
희망이 부르는 소리  (0) 2017.06.03
꽃은 모두에게 꽃이 아니구나  (0) 2017.03.08
붉은 닭의 해를 맞아  (0) 2017.03.08
Posted by 차옥혜
,

 

희망이 부르는 소리

                                                  차옥혜

 

희망은 어서 자기를 찾아오라고

수시로 내 마음에 발신지가 없는

전문을 보내지만

나는 이제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지치고 발가락이 아프며

신발도 닳아 터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새벽부터 밤늦도록

찾아 헤매었나

신기루일까 별일까

이제 희망을 버리고

호박이나 바람개비로 살자 하는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어서 오라고 끈질기게 재촉한다

몇 걸음 떼어보다 헐떡이며 주저앉아

“제발 나를 그만 내버려 둬”

소리친다 그래도 한사코 끝까지

저를 찾는 것이

참 삶이라고

나를 부추긴다

문 닫고 눈 감고 귀 막아도

끝없이 늙고 힘없는 나를 괴롭히는

희망이 부르는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문학과 창작 2017년 여름호>

 

'시 -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 앞에서  (0) 2017.06.24
사랑도 넘치면 독이 되나 봐  (0) 2017.06.22
꽃은 모두에게 꽃이 아니구나  (0) 2017.03.08
붉은 닭의 해를 맞아  (0) 2017.03.08
촛불 꽃 마음 꽃  (0) 2017.03.08
Posted by 차옥혜
,

 

꽃은 모두에게 꽃이 아니구나

                                                       차옥혜

 

벚꽃들이 내민 수만 손을 잡고

벚꽃들의 눈빛에 끌려

벚꽃 세상을 떠돌며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아

해마다 벚꽃과 바람나고 싶어

내가 노래하고 있는 순간

친구여

벚꽃 아래에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은 친구여

만발한 벚꽃이 네겐 고통스런

눈물이었느냐 종기였느냐

등을 짓누르는 멍에가

벚꽃 파도로도 떠밀려가지 않더냐

곧 꽃비로 사라질 벚꽃의 허무를

차마 볼 수 없었느냐

정말은 벚꽃의 손을 잡고 싶었는데

누가 무엇이 너를 가로막았느냐

벚꽃이 눈부신 이 봄날에

벚꽃을 등지고

어디를 가고 있느냐

친구여

       

<문학예술  2016년 여름호>

<2017년 오늘의 좋은시(푸른사상) 2017 재수록>

 

'시 -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도 넘치면 독이 되나 봐  (0) 2017.06.22
희망이 부르는 소리  (0) 2017.06.03
붉은 닭의 해를 맞아  (0) 2017.03.08
촛불 꽃 마음 꽃  (0) 2017.03.08
칡의 이성과 본성  (0) 2017.01.23
Posted by 차옥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