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빈손은 무엇을 노래해야 하나

                                                                        차옥혜

 

 

개미허리톱다리노린재 떼가

내 서리태 밭을 점령했다

 

씨 뿌려 모종을 내고

북돋우고 김매며

한여름 불붙은 몸 땀띠 솟아가며

새벽부터 해거름까지

가꾸고 가꾼 밭

무성하게 솟은 순 쳐주고

다시 콩잎 솟구쳐

콩 줄기 갈라진 자리마다

수 만 보랏빛 작은 꽃 눈 떠

보석처럼 빛날 때

내 눈에도 수 만 서리태 꽃 피어

반짝였는데

꽃 진 자리 주렁주렁

어린 콩깍지 매달릴 때

내 가슴에도 콩깍지 무더기로 매달려

무지무지 설레었는데

개미허리톱다리노린재 떼가

콩깍지 속 콩즙을 다 빨아먹어버려

서리 내려도 빈 콩깍지와 마른 콩잎만

서걱거린다

 

추수의 계절 살이 닳도록 일하고도

빈들에 선 빈손은

무엇을 노래해야 하나

 

 <PEN문학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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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앞에서

시 -3 2017. 6. 24. 17:32

바다 앞에서

                                  차옥혜

 

 

내가 버린 꿈이

내가 포기한 희망이

내 손을 잡고 싶어

바다를 밀고 밀며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흰 옷자락을 펄럭이며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몸부림치며 애원하며

나를 부르고 있다

 

어찌 너를 잊었으랴 잊으랴

그러나 너와 내 사이

바다는 너무 깊고 넓으며

내 뒤엔 탈 수밖에 없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차가 오고 있다

 

꿈이 희망이

잡힐 듯 안길 듯하여 들뜬

푸른 나는 어디 가고

쫒기며 애달프고 막막한

하얀 나만 서있는가

 

   <한국시학 2017년 여름호>

 

Posted by 차옥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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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넘치면 독이 되나 봐

                                                            차옥혜

 

 

비정규직으로 떠돌다

오래 만에 집에 들른 노총각 아들

한밤중 인기척에 깨어 보니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토하네

 

공중 줄타기 같은 일자리에 시달려

밥 제때 제대로 못 챙겨 먹어

마른 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밥과 국 듬뿍 담아

밥상을 차려주며

밥 많이 먹어라 밥이 힘이다

라는 말 주문처럼 되풀이 하는 것

 

고달파 줄어든 위로

에미 기분 좋게 하려고

억지로 많이 먹어 체했나

 

아들 몸과 마음 살찌우려다

되레 병만 준 에미

속수무책으로 가슴 쓰라린 밤

 

  < 한국시학,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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