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차옥혜
자주 홍수가 나던 황야
길 없는 벌판에 길을 내시며
헤매는 이들의 손목을 잡고
길을 가시는 아버지
삶의 굽이굽이 가시밭 길목마다
아버지의 상처에서 피어난 꽃들이
내 넋을 깨우고
나를 향기롭게 하고
내 마음을 열어
뒤 뜰 풀 한 포기의 한숨소리를
바위 틈 다람쥐의 흐느낌을
듣게 하며
발아래 있는 하늘도 보게 하여
내가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게 합니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마른 나무들의 뿌리를 적시는
아버지의 강물이
가문 내 마음 밭에
완두콩도 열리고
감자 꽃도 들깨 꽃도 피게 합니다.
언제나 아침이신 아버지
저녁에도 아침같이
세상을 살라 하십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는
모래바람 속을 헤매는 철부지 탕아지만
아버지께서 언제나 대문에 켜놓으신
초롱불빛 보고
동서남북 방향을 헤아립니다.
오늘도 길 없는 황야에 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길은 내 가슴 벌판에 환하고
끝내는 나도 가야 할 길입니다.
백발이 나부껴도
오늘도 정정한 걸음으로
길 없는 벌판에 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시선집 『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하늘』 2014>
'시 -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프치히에서 한반도 통일을 그리다 (0) | 2017.01.08 |
---|---|
아버지 목소리 (0) | 2016.12.31 |
착한 사마리아인 (0) | 2016.12.25 |
떨기나무 불꽃을 본 모세들 (0) | 2016.12.11 |
얼어 죽은 물총새의 푸른 날개 (0) | 2016.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