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목소리

시 -3 2016. 12. 31. 15:15

 

아버지 목소리

                                          차옥혜

 

가난한 가장 노릇 얼마나 아팠을까

찢어진 조국을 붙이려던 손 얼마나 힘겨웠을까

끝끝내 걷던 사랑과 진리의 길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버지 떠나고 나 어두워서야

아버지 십자가를 어루만진다

아버지 용기와 열정을 우러른다

아버지 목소리를 듣는다

 

증오, 분열, 싸움, 고통, 기아, 재해, 야만 있는 곳에

목련, 모란, 백합, 장미, 수국, 상사화, 국화, 동백……

꽃을 피워라

느티, 소, 향, 호두, 사과, 감, 대추, 잣, 은행, 귤 ……

나무를 심어라

유채, 민들레, 벼, 고추, 부추, 고구마, 콩, 생강, 배추……

초원을 펼쳐라

내 마음에 울리는 아버지 목소리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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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차옥혜

 

 

자주 홍수가 나던 황야

길 없는 벌판에 길을 내시며

헤매는 이들의 손목을 잡고

길을 가시는 아버지

 

삶의 굽이굽이 가시밭 길목마다

아버지의 상처에서 피어난 꽃들이

내 넋을 깨우고

나를 향기롭게 하고

내 마음을 열어

뒤 뜰 풀 한 포기의 한숨소리를

바위 틈 다람쥐의 흐느낌을

듣게 하며

발아래 있는 하늘도 보게 하여

내가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게 합니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마른 나무들의 뿌리를 적시는

아버지의 강물이

가문 내 마음 밭에

완두콩도 열리고

감자 꽃도 들깨 꽃도 피게 합니다.

 

언제나 아침이신 아버지

저녁에도 아침같이

세상을 살라 하십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는

모래바람 속을 헤매는 철부지 탕아지만

아버지께서 언제나 대문에 켜놓으신

초롱불빛 보고

동서남북 방향을 헤아립니다.

 

오늘도 길 없는 황야에 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길은 내 가슴 벌판에 환하고

끝내는 나도 가야 할 길입니다.

 

백발이 나부껴도

오늘도 정정한 걸음으로

길 없는 벌판에 길을 내시며

길을 가시는 아버지.

 

<시선집 『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하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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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

시 -3 2016. 12. 25. 17:24

 

착한 사마리아인

                                               차옥혜

 

 

프랑스 아를에 있는 고흐가 살던 집

대문 안 본채로 가는 길 오른쪽 담벼락에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고흐의 그림

<착한 사마리아인>

 

나의 아버지는

평생 “착한 사마리아인” 운동을 하셨고

“착한 사마리아인”을 내게 유산으로 남겼으나

그 유지 받들지 못하고 사는 나를

이역만리에서 뜻밖에 순간 내려치는 고흐의 그림

 

“착한 사마리안”이 그리워서

“착한 사마리안”이 되고 싶어서

“착한 사마리안”이 어려워서

한없이 길을 가며 울던 소녀 시절 나는

어디로 갔는가

 

늙고 눈물 마른 나는 옛길로 되돌아가

눈물 머금은 그 눈동자를 찾아야겠다

 

<시와 문화  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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