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 불꽃을 본 모세들

                                                         차옥혜

 

 

떨기나무 불꽃을 본 사람이

이스라엘인 모세뿐이랴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앞에 신발을 벗고

에집트에서 억압받는 동족을 구해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음성을 들은 이가

이스라엘인 모세뿐이랴

힘 없어요 두려워요 말주변 없어요

그냥 양이나 치고 귀막고 눈감고 살고 싶어요

겁나고 도망가고 피하고 싶어 하소연하다

어느덧 가슴에 옮겨 붙은 떨기나무 불꽃 때문에

고통하는 동족을 자유의 땅으로 탈출시킨 이가

이스라엘인 모세뿐이랴

 

세계가 열린 이래

어둠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떨기나무 불꽃을 본 모세들이

위로와 빛을 주었으니

 

헬조선에서 떨기나무 불꽃을 본

모세들의 대 행진에

농부 할아버지 모세 한 분

쌀값 폭락 농민들의 어려움 호소하고

젊은 모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려다

공권력의 정조준 물대포에 쓰러져

뇌출혈로 의식 잃어 뇌수술 받고

300여일이나 사투하다 영면했는데

사망진단서에 외인사를 병사라고 적은

대한민국 최고 병원 뇌신경외과 과장 의사

사고 이후 사과 한 마디 없이 수사도 않던

공권력이 부검을 하겠다니

농부 할아버지 모세의 시신을 지키려 모여든

1000여명의 시민 모세들

 

사망진단서가 배운 것과 틀리다고

스승들에게 길을 묻는 공개 펀지를 낸

의과대학생 모세들

 

사망진단서가 의료 원칙에 어긋난다고

공개 성명을 낸 의사 모세들

 

가족과 협의 없는 부검은 위법이라고

성명을 낸 변호사 모세들

 

떨기나무 불꽃을 본 모세들 있어

마침내 마침내 헬조선에 해가 뜨리

외인사 농부 할아버지 모세

고이 영면하고 다시 살아 영원히

떨기나무 불꽃 되리

 

억울한 사람들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꽃이 될 때까지

떨기나무 불꽃은

세상 곳곳에서

모세를 부르고 또 부르리

 

<경희문학 30집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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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 죽은 물총새의 푸른 날개

                                                     차옥혜

 

 

언 강 위에

반짝이는 푸른 날개를 쫙 편 채

죽은 물총새

 

여름 철새 물총새는

제가 태어난 무성한 여름 숲에

물고기가 가득한 맑은 여름 강에

겨울이 온다는 것을 몰랐을까

왜 남쪽 나라로 가는

물총새 무리를 빠져나와

텃새가 되려했을까

 

미처 미래세계를 통찰하지 못한 죄

엄마 새의 지혜에 기대지 못한 죄

새는 새무리 속에서 새이고 세상임을

모른 죄

미처 얼지 않은 얼음 구덩이에

총알처럼 뛰어들어 물고기를 물고 와

겨울 나뭇가지에서 허기를 달래던 물총새는

마침내 다 얼어버린 강을 깨려

온 몸으로 사투하던 물총새는

제 죄를 울었을까

아니면 끝끝내 겨울과 맞서며 본

제 푸른 날개 빛 같은 자유를 울었을까

 

햇빛에 반짝이는 얼어 죽은 물총새의

푸른 날개가 시리고 시리다

 

생이여!

 

<경희문학  30집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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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지 서평]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시냇물 흐르고 실바람 부는 숲과 비밀스런 초원이 펼쳐져 있는 은밀한 시집이다. 시 한 편 한 편이 민들레, 유채, 목련, 억새꽃, 개나리, 감나무, 살구나무, 튜립나무 등 생명의 씨앗들이다. 깊은 생각들이 정다운 시어(詩語)의 숲을 이루었구나. 시인 이상은 거울에서 자신을 마주했고, 윤동주는 우물에 반사된 자신을 보았다. 차옥혜 시인은 숲을 거울로 삼은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시집을 읽으며 숲을 거울 삼아 내면(內面)을 마주하는 독특한 체험을 했다. 이 시집을 읽는 당신도 온누리의 작은 누리로서 숨쉬는 인간의 근원적 행복을 성찰하게 될 것이다.

  

 

[시집 표지 서평]

이규배(시인)

 

시는 그 사람이라는 말이 낡은 집 처마 끝에서 녹슨 풍경(風磬)과 같이 목매달려 있을 때, 차옥혜 선생님은 그 풍경을 우리들 마음에 다시금 울려 깨운다. “젖고 젖어서 / 이제는 / 바람 불고 불어도 / 꽃잎이 날아와도 / 나비가 앉아도 / 울지 못하는 / 녹슨 풍경 // 오직 / 넋이 울리는 제 몸 / 소리 없이 우는 풍경에 / 마음의 귀만 아파라”(녹슨 풍경부분). 녹슨 풍경이 청아(淸雅)로 살아 울리니, 봄 숲에 퍼지는 햇살처럼 선생의 마음이 몸속으로 스미어 와 맑고 밝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집을 숲 거울이라고 읽으며 몸과 마음을 절로 살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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