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나는 사람

시 -3 2016. 1. 31. 10:06

  

한글로 나는 사람

                                            차옥혜

 

 

오십년 전 일기장을 펼치니

잊었던 옛날이 오늘인 듯 환하다

한글로 아로새긴 꿈과 고뇌

한글로 그린 소녀의 초상

 

한글 속에 보이는

세종대왕의 빛

세종대왕의 한겨레 사랑

 

한자 영어 불어 독어에

맴돌아보았으나

나를 투사 못한 나

한글이 없었으면

돼지가 되었을까

 

한글로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한글, 문학을 노래하다(국제펜클럽한국본부)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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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살구나무

시 -3 2015. 7. 30. 15:00

 

억울한 살구나무

                                               차옥혜

 

 

살고 싶다 잘 살고 싶었다

가지마다 빈틈없이 화사한 꽃을 매달고

천지사방 벌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다

푸른 하늘에 무성한 잎을 드리워

새들의 노래자랑 무대가 되고

내 그늘에 모여 쉬는 사람들에게

잘 익은 열매를 떨어뜨려주고 싶었다

주인이 나를 자랑하며 기쁘기를 바랐다

 

나는 묘목으로 팔려온 새 뜰에서

꿈을 펼치려고 온 힘을 다하여 몸부림쳤다

그러나 늙은 감나무뿌리는 내 어린뿌리를

가로지르며 한사코 텃세를 부리고

잔디뿌리는 내 발을 칭칭 감고 옥죄었다

나무와 풀들이 몰려와 내 물을 빼앗아 마셨다

허덕이며 듬성듬성 꽃을 피우고 새싹을 내밀면

애벌레들이 잽싸게 갉아먹어버렸다

간신히 몇 개 열린 살구는 바람이 날려버렸다

 

주인은 나를

오래 기다렸으나 가망이 없다고

톱을 들고 다가선다

 

<문학과행동  2015년 여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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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의 그리움

시 -3 2015. 6. 4. 08:39

 

감나무의 그리움

                                           차옥혜

 

 

새싹 내밀며 기다렸다

 

꽃피우며 꽃잎 흩날리며 기다렸다

 

잎새 반짝이며 기다렸다

 

열매 맺어 붉도록 기다렸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그리움은 오지 않아

단풍잎 바람 길로 그리움 찾아 떠돌다

가랑잎 땅 길로 그리움 찾아 헤매다

바스라지고 으깨졌다

 

홍시 눈물 뚝뚝 떨어졌다

 

잊자 잊자 마음 다잡아도 끝내 못 잊어

빈 가지 가득 눈꽃 피워놓고 기다린다

 

<문학과창작  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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