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거울

시 -3 2015. 5. 22. 22:20

 

숲 거울

                                                     차옥혜

 

 

숲에 들면

내가 보인다

앞만 보이지 않고 뒤도 보인다

현실만 보이지 않고 과거도 미래도 보인다

현상만 보이지 않고 숨은 것도 보인다

죽은 목숨들의 영혼도 보인다

바위, 흙, 하늘, 구름, 바람, 계곡 물의

마음도 보인다

 

세상을 등지려고 숲 거울에 든 그 사람은

자신을 에워싼 수백 송이 달맞이꽃이

밤새워 꽃문을 여는 것을 보고

세상으로 돌아갔다

어떤 사람은 숲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앞은 약한 짐승을 쫒는 맹수 이고

뒤는 벼락 맞은 나무인 것을 보고

아예 숲 거울에 자리를 펴고 도인이 되었다

 

나는 숲 거울에서 지금 무엇을 보는가

앞은 더덕이고 뒤는 나비인 나

뿌리와 날개가 대지와 하늘이 맞서

안개가 낀다

 

 <PEN문학  2015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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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 2014. 7. 3. 14:51

 

                                                     차옥혜

 

머리채는 하늘에 잡히고

발목은 땅에 묶여

빛과 어둠의 채찍을 번갈아 맞으며

둥둥둥 울고 있는 북아

뿌리쳐라

하늘과 땅을 뿌리쳐

뜻대로 굴러

네 울음 울어라

 

<1991년 한국문학작품선(문예진흥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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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와 나

시 -3 2014. 7. 1. 16:50

 

 풍차와 나

                                                       차옥혜

 

풍차가

바람을 말고 있다

하늘을 말고 있다

 

풍차는

빛을 만들어

오늘을 돌려 내일을 끌어 온다

 

나는

땅을 갈고 있다

씨를 뿌리고 있다

 

나는

생명을 길러

오늘을 살려 내일을 세운다

 

풍차가 돈다 허공에서

내가 구른다 땅에서

풍차는 나 나는 풍차

 

<시와 시학  201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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