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감과 까치의 결혼식

                                                              차옥혜

 

하늘이 높고 맑고 푸르른 날

홍시감과 까치가 결혼식을 올린다

해가 주례를 선다

들깨, 서리태, 벼, 늙은 호박, 배추, 무, 파, 갓……

국화, 만수국, 채송화, 벌개미취, 맨드라미, 참취……

소나무, 좀작살나무, 화살나무, 모과나무, 주목, 밤나무……

새, 멧돼지, 토끼, 고양이, 쥐, 개, 고라니, 다람쥐……

도라지 캐던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네

장가 못간 아들 시집갔다 못 살고 온 딸

들판을 꽉 채운 축하객들이 가슴 설레며

늙은 감나무 우듬지 신부 홍시감과 신랑 까치를 본다

신랑 까치가 터질듯 부푼 신부 홍시감 깊숙이

부리를 박고 입 맞추며 몸을 떤다

신부 홍시감의 바람 면사포가 출렁인다

새들이 축하합창을 한다

홍시감의 온 몸이 더욱 붉어진다

저런! 막 결혼식을 올린 신랑 까치가

벌써 다른 홍시감과 또 새장가를 든다

해는 망설임 없이 또 주례를 선다

들판 하객들이 소란해진다

 

<문학과 창작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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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 대한 존재전환

  전원범

 

 

차옥혜의 어머니와 꿩과 불명열, 빙하꽃,

중략

도 관심을 끌게 한다. 꿩을 소재로한 사실의 경험과 추억을 기술하면서 모정의 그리움을 환기하고 있는 어머니와 꿩과 불명열, 독특한 한 문장 속에서 점층적 수법으로 고양시키다가 정점에서 모정을 자아내는 빙하꽃,

중략

등이 모두 깨달음이요, 발견이요, 해석으로서 시 정신을 획득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산문언어와 일상언어를 극복하고 시로서의 차원을 확보해나갔을 때 독자들에게 감동이 전달된다.

시 정신이 없는 단순한 체험의 나열이 횡행하는 시대에 진지한 성찰과 긴장된 언어장치를 대하는 것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시문학 201010월호 167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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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차옥혜

 

별을 기르는

맑은 바람과 청결한 생수를 뿜는

숲이고 벌판인

흙사람들이 사는 곳

봄엔 진달래 되고 여름엔 목백일홍 되고

가을엔 국화 되고 겨울엔 동백 되고

밤엔 등불 되고 낮엔 햇빛 되는

흙사람들 노래하는 곳

어리고 병든 목숨에겐 어미가 되어주고

약하고 힘없는 생명에겐 아비가 되어주는

흙사람들 춤추는 곳

사람과 식물과 동물이 말을 주고받고

사람과 식물과 동물이 서로 아껴주고 존중하고

사람과 식물과 동물이 함께 세상을 가꾸고 이루는

천개의 무지개가 뜬 초록 동네 모여 있는 곳

너무 멀리 떠나왔으나

하루하루 되돌아가고 있는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의 품

 

<패랭이 꽃의 안부를 묻다(한국시인협회),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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