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도미네

시 -3 2013. 4. 12. 09:06

    

바디스 도미네

                                                        차옥혜

 

세상은 거대한 눈꽃입니다

길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푸른 보리밭과 생수가 솟구치는 울창한 삼나무 숲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장발장은 배고픈 조카들 때문에 또다시 빵조각을 훔쳐

교도소에 재수감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은 빵을 찾아 죽음일지도 모르는

눈 산을 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폭설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쳤지만

얼어 죽었습니다

가엾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눈꽃 속을 헤매다

죽어야 합니까

천년입니까 만년입니까

봄은 정녕 꿈꿀 수 없는 것입니까

햇살이 새싹의 볼을 어루만지는 벌판을

배고픈 이들을 위한 무료 빵가게를

언제쯤 볼 수 있습니까

생명이고 사랑이고 평화고 희망이고 영원인 당신이시여

세상을 덮어버린 눈꽃에 길을 내시며 오소서

눈꽃을 헤쳐 언 손들을 잡아끌어 언 몸을 품어주소서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시와 산문  2013년 봄호>

 

*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 라틴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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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시감과 까치의 결혼식

                                                              차옥혜

 

하늘이 높고 맑고 푸르른 날

홍시감과 까치가 결혼식을 올린다

해가 주례를 선다

들깨, 서리태, 벼, 늙은 호박, 배추, 무, 파, 갓……

국화, 만수국, 채송화, 벌개미취, 맨드라미, 참취……

소나무, 좀작살나무, 화살나무, 모과나무, 주목, 밤나무……

새, 멧돼지, 토끼, 고양이, 쥐, 개, 고라니, 다람쥐……

도라지 캐던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네

장가 못간 아들 시집갔다 못 살고 온 딸

들판을 꽉 채운 축하객들이 가슴 설레며

늙은 감나무 우듬지 신부 홍시감과 신랑 까치를 본다

신랑 까치가 터질듯 부푼 신부 홍시감 깊숙이

부리를 박고 입 맞추며 몸을 떤다

신부 홍시감의 바람 면사포가 출렁인다

새들이 축하합창을 한다

홍시감의 온 몸이 더욱 붉어진다

저런! 막 결혼식을 올린 신랑 까치가

벌써 다른 홍시감과 또 새장가를 든다

해는 망설임 없이 또 주례를 선다

들판 하객들이 소란해진다

 

<문학과 창작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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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 대한 존재전환

  전원범

 

 

차옥혜의 어머니와 꿩과 불명열, 빙하꽃,

중략

도 관심을 끌게 한다. 꿩을 소재로한 사실의 경험과 추억을 기술하면서 모정의 그리움을 환기하고 있는 어머니와 꿩과 불명열, 독특한 한 문장 속에서 점층적 수법으로 고양시키다가 정점에서 모정을 자아내는 빙하꽃,

중략

등이 모두 깨달음이요, 발견이요, 해석으로서 시 정신을 획득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산문언어와 일상언어를 극복하고 시로서의 차원을 확보해나갔을 때 독자들에게 감동이 전달된다.

시 정신이 없는 단순한 체험의 나열이 횡행하는 시대에 진지한 성찰과 긴장된 언어장치를 대하는 것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시문학 201010월호 167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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