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숲에서

시 -3 2012. 3. 6. 13:24

안개 숲에서

                                                                차옥혜

 

안개가 자욱하여 빽빽한 숲이 사라지고

나와 당신만 남았습니다

새가 나는 당신의 눈동자를 보는 것도 잠시

당신마저 사라지고 천지사방 나만 남았습니다

안개 방에서 안개 꽃을 즐기는 것도 순간

안개는 이내 고립과 두려움이 됩니다

실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

나는 여전히 숲에 있고

벌판도 산도 마을도 바다도 하늘도 그대로 있습니다

동물들은 뛰고 달리고 서성이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화는 안개가 몰고 오는 것이 아니고

나와 당신과 세상과 우주가 함께 만드는

흙입니다 공기입니다 물입니다 햇빛입니다

곧 햇빛이 와서

안개 무덤에 갇힌 나와 당신을 풀어주면

선명한 자유의 꽃을 보겠습니다

환상의 너울을 벗은 참 나와 당신을 보겠습니다

 

<문학과 창작   2012년 봄호>

 

'시 -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8) 2012.12.08
겨울 나그네의 꿈  (0) 2012.12.08
다 함께 점령하라  (0) 2011.11.23
이태석 신부님의 향기 때문에  (0) 2011.10.26
어느 마사이족 부부의 밤  (0) 2011.10.26
Posted by 차옥혜
,

[시집 표지 서평]

김형수(시인, 문학평론가)

 

차옥혜 시인은 가공된 무대를 설정하지 않는다. 세상의 틀이 미학의 틀이다. 모든 현상은 폐쇄된 인식의 회로를 벗어나 무한을 향해 열려 있고, 시어들은 한 번 스쳐 가는 데 100년이 걸리는 존재의 그림자들에게, 그것이 머물고 가는 짧은 세월을 호명한다. 시적 열림이 야성적으로 얽힌 생명 관계들을 비추기 때문일까? 화자의 진술들은 모두 사라져 가는 시간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실존의 형상이 된다. 이 조용한 생태질서의 밑바닥에 있는 것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보면서 우리는 존재의 진실과 안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시집 표지 서평]

공광규(시인)

 

차옥혜 시인의 이번 시집은 자연 친화적 생명의식과 생태적 상상력에서부터 사회정치적이고 범지구적인 상상력까지 그 폭이 광대하다. 시인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밀한 살림살이에서부터 세계 금융자본의 탐욕과 원자력발전소 건설의 문제까지 소재를 폭넓게 채집하여 주제화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대모(大母)의식은 패권적이고 고장난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보여 달라며 삶의 울음소리로 발현된다. 발현되는 시인의 육성은 별을 기르는/ 맑은 바람과 청결한 생수와 같이 맑고 깨끗하다. 시인은 지구의 곳곳에서 사람과 동식물이 서로 소통하고 아껴주고 존중하며, 이 세상을 함께 가꾸어가려는 대모의지를 보여준다. “지구가 하나의 나라가 되고/ 세계 나라들이 자치도시가 되어/ 굶어 죽는 어린이가 없, “지구 어디서나 맑은 물을 먹을 수 있고/ 병든 사람들 무료로 치료받고/ 어떤 종교든 서로 축복하고/ 신을 믿거나 안 믿거나 서로 존중하며/ 지구의 모든 무기를 묻어버리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대모의식을 가진 차옥혜는 지구에 생명과 평화와 사랑의 노래가 울릴 때까지 초록시를 쓰고 또쓸 것이다.

Posted by 차옥혜
,

다 함께 점령하라

시 -3 2011. 11. 23. 16:04

  

다 함께 점령하라

                                                차옥혜

 

 

맑고 환한 시월 먼 길들이 세상의 나무들이

불러대 뛰쳐나가려는데

느닷없이 대상포진이 나를 점령했다.

육십년 동안이나 기회를 노린 수두 바이러스가

내 왼쪽 몸 1%도 안 되는 곳에 거점을 잡고

내 왼쪽 몸만 이 곳 저 곳 창으로 찔러대도

내 오른 쪽 몸까지 함께 온몸이 비명을 질러대는데

 

미국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하라”고 벌리던 시위가 번져

2011년 10월 15일 전 세계 82개국 1500여개 도시에서

“다 함께 점령하라”

세계 99% 사람들을 빈곤에 허덕이게 하는

세계 1% 사람들이 독점한

“탐욕의 금융자본을 다 함께 점령하라”

지구의 생명과 안녕을 위협하는

“탐욕의 원전을 다 함께 점령하라”

“빈곤을 철폐하라”, “비정규직을 철폐하라”

고 외치며 동시에 벌어진 시위가 내 가슴을 친다.

 

나도 아파서 쩔쩔 매며 신음하고 절망한

내 몸 99%를 향해 내 몸 1%도 안 되는 대상포진을

“다 함께 점령하라” “다 함께 점령하라”

고 애타게 호소하며 부추기니

내 입에 새싹이 돋는다. 하늘이 보인다.

 

<PEN 문학   2012년 12월호>

 

'시 -3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마다 되돌아가고 있는 고향은  (8) 2012.12.08
겨울 나그네의 꿈  (0) 2012.12.08
안개 숲에서  (0) 2012.03.06
이태석 신부님의 향기 때문에  (0) 2011.10.26
어느 마사이족 부부의 밤  (0) 2011.10.26
Posted by 차옥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