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눈부신 사람 

                                                    차옥혜

 

꽃을 보기 위하여

먼 길 걸어가는 이여

오래 아파하는 이여

꽃을 위하여

오래 울고 있는 이여

꽃을 지키기 위하여

긴 세월 시달리는 이여

꽃을 보고 꽃과 함께 하는 시간은

순간이지만 언제나 아쉽지만

때로는 끝내 못 만나기도 하지만

꽃을 위하여

모두를 바치는 당신의 삶은

꽃보다 더욱 아름답다 순결하다.

꽃을 오래 참고 기다리는 당신은

꽃보다 더욱 눈부시다.

 

<동서문학  200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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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

시 -2 2011. 2. 9. 11:42

  

희망봉

                                                            차옥혜

 

 

달리고 달려온 대륙을 바다가 가로막는 곳

파도쳐 파도쳐온 바다를 절벽이 가로막는 곳

거기에 희망봉이 있다

바다는 절벽을 기어올라야 희망봉에 오를 수 있고

땅은 바다에 빠져야 희망봉을 만날 수 있다

두려움과 절망과 죽음을 무릅써야만

만날 수 있는 희망봉

적과 적이 덜컥 껴안아야만

만날 수 있는 희망봉

살아 있는 한

포기할 수 없는 곳

저절로 꿈꾸며 달려가는 곳

그러나 오늘도

바다는 끝없이 밀려와 절벽을 기어오르다

미끄러지고

땅은 끝없이 달려와 바다 앞에서 한숨 쉰다

 

있으나 없는 희망봉

쓸쓸하고 영원한 오로라여

 

<시문학   2007년 5월호>
<문학사상  2007년 6월호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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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시 -2 2010. 6. 30. 19:17


 

약력

                                          차옥혜 

 

 

약력을 쓴다.

몇 년 어디서 태어나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직업을 갖고

무슨 상을 타고

 

단 몇 줄로 기록된 이것이 나인가.

줄의 행간에 파도치는

한숨과 눈물과 고통과 절망을

웃음과 기쁨과 환희를

어둠과 빛의 무늬를

말하지 않고

이것이 나인가.

약력 뒤에 비치는

내 땀과 눈물과 피가 얼룩진

저 벌판과 길들과 마을들을

말하지 않고

이것이 나인가.

 

약력을 쓰다 말고

창 밖

약력 없이도

그대로 환한 별을

그대로 환한 미루나무를

본다.

 

<시인정신  200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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