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앞에서

시 -3 2017. 6. 24. 17:32

바다 앞에서

                                  차옥혜

 

 

내가 버린 꿈이

내가 포기한 희망이

내 손을 잡고 싶어

바다를 밀고 밀며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흰 옷자락을 펄럭이며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몸부림치며 애원하며

나를 부르고 있다

 

어찌 너를 잊었으랴 잊으랴

그러나 너와 내 사이

바다는 너무 깊고 넓으며

내 뒤엔 탈 수밖에 없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차가 오고 있다

 

꿈이 희망이

잡힐 듯 안길 듯하여 들뜬

푸른 나는 어디 가고

쫒기며 애달프고 막막한

하얀 나만 서있는가

 

   <한국시학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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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넘치면 독이 되나 봐

                                                            차옥혜

 

 

비정규직으로 떠돌다

오래 만에 집에 들른 노총각 아들

한밤중 인기척에 깨어 보니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토하네

 

공중 줄타기 같은 일자리에 시달려

밥 제때 제대로 못 챙겨 먹어

마른 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밥과 국 듬뿍 담아

밥상을 차려주며

밥 많이 먹어라 밥이 힘이다

라는 말 주문처럼 되풀이 하는 것

 

고달파 줄어든 위로

에미 기분 좋게 하려고

억지로 많이 먹어 체했나

 

아들 몸과 마음 살찌우려다

되레 병만 준 에미

속수무책으로 가슴 쓰라린 밤

 

  < 한국시학,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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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부르는 소리

                                                  차옥혜

 

희망은 어서 자기를 찾아오라고

수시로 내 마음에 발신지가 없는

전문을 보내지만

나는 이제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지치고 발가락이 아프며

신발도 닳아 터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새벽부터 밤늦도록

찾아 헤매었나

신기루일까 별일까

이제 희망을 버리고

호박이나 바람개비로 살자 하는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어서 오라고 끈질기게 재촉한다

몇 걸음 떼어보다 헐떡이며 주저앉아

“제발 나를 그만 내버려 둬”

소리친다 그래도 한사코 끝까지

저를 찾는 것이

참 삶이라고

나를 부추긴다

문 닫고 눈 감고 귀 막아도

끝없이 늙고 힘없는 나를 괴롭히는

희망이 부르는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문학과 창작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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