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시 -4 2018. 12. 20. 15:52

마늘

                                                      차옥혜

 

모두가 떠난 겨울 밭을

지키고 있는 님이여

눈이 쌓이고

찬바람 몰아치며

꽁꽁 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터

당당하게 겨울을 건너는 님이여

당신이 경이롭고 눈물납니다

나도 당신처럼

내게 닥친 두렵고 떨리는

겨울을 이기고

다시 봄날에 푸르른 잎을 흔들며

맵고 알찬 육 쪽 새끼들을 다시

거느리고 싶습니다

자랑하고 싶습니다

노래하고 싶습니다

아 아 해마다 봄날에게 당신에게

입 맞추고 싶습니다

님이여

 

                                           <산림문학  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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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구멍이 숭숭 뚫린 물통

                                                         차옥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백마고지 인근

6.25 전쟁 때 치열한 격전지였던

화살머리고지 비무장지대에서

남과 북이 지뢰를 제거하고

20181025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최초로 발굴한

2 구의 육군 유해 중

이등중사 박재권 씨 곁엔

65년 동안이나 주인을 지키고 있는

인식표와 총알구멍 숭숭 뚫린 물통

 

아파라, 쓰라려라, 숨 막혀라

 

비 오듯 쏟아진 총탄 속에 쓰러진

원혼들의 가슴 치는 절규가 울린다

 

우리를 찾는데 왜 이렇게

긴 세월이 걸렸느냐

절대 전쟁은 없어야 한다

평화 평화만이 모든 사람이 살길이다

 

<산림문학 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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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다 지기 전에

시 -4 2018. 8. 16. 15:09

꽃이 다 지기 전에

                                                         차옥혜

 

 

꿈꾸며 반짝이던 저 꽃봉오리들

순수하고 청초하던 저 꽃들

누가 짓밟아

생명의 존엄과 긍지와 자존심을

누가 깔아뭉개어

평생 원한이 꽃잎마다 사무치게 했나

 

힘없는 식민지 백성이라고 씌운

억울하고 아프고 서럽고 진저리나는

멍에로 치욕에 떨며

살았어도 죽은 것 같이 살아야했나

 

독일은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무릎 꿇어 참회하며 용서를 빌어 화해하고

낱낱이 밝혀 나라 곳곳 박물관에 전시하고

역사의 거울로 삼았는데

점령국 일본은 백일하에 들어난

죄를 모르쇠 잡고

끝끝내 꽃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이제는 몇 송이 남지 않은 꽃들

어서 다 지기만을 바라는가

꽃이 다 진다한들 저 아픈 꽃들

영원히 한겨레 마음에서

다시 피고 또 피리니

 

식민지 꽃들을 강제로 혹은 속여 끌고 가

전쟁터 일본 군대의 성노예로 만들어

꽃이면서 꽃으로 살지 못하고

여름에도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떨며

맑은 날에도 가슴 속에 쏟아지는 비를 맞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꽃들

마저 다 지기 전 서둘러 사죄해야

일본은 떳떳한 나라가 되리

문명국이 되리

 

  <2018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를 위한 작품집(창작21 작가회)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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